2014.9.
베르겐 버스터미널(Bergen Bus station)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쯤, 버스 안에서 이것저것 먹고 마시고 했더니 볼일이 급하다. 편안하고 무료인 곳을 이용하기 위해 미술관? 박물관? 처럼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는데, 1층 로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니 한쪽편에 무료 화장실이 있다. 역시. 일 보고 나와서 다시 찬찬히 로비를 둘러보니 작곡가 그리그(Grieg) 아트센터 겸 공연장(Grieghallen)이다! 헉! 그리그가 베르겐 사람이었구나. 내가 사랑하는 작곡가 중 한명인 그리그, 이렇게 영광스러운 장소에 우연히 들어오다니 나는 바보 아니면 행운아다. 마음 속으로 그리그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온다. 반가웠습니다.
베르겐 버스터미널 옆 쪽으로 베르겐역(Bergen station)이 있다. 회색 벽돌을 쌓아올린 건물 외형이 고급스럽다. 심지어 예술적으로 까지 보이는 것은 '그리그(Grieg) 효과'인가. 모레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오슬로(Oslo)로 간다. 미리 기차역과 기차역 내부 티켓 발매기 위치를 확인하고 나온다.
숙소로 바로 올라갈까 하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베르겐 시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역에서 멀지않은 곳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다. 호수공원 주변으로 미술관, 박물관, 중앙광장, 쇼핑몰 등이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날이 흐려 공원의 초록이 제 빛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잘 관리된 공원이라는 건 알 수 있다.
출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광장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케밥집이 보인다. 한식, 중식 찾을 여유도 없고 해서 간식으로 케밥을 하나씩 주문했는데 양이 '간식' 수준이 아니라 '식사' 수준으로 많다. 둘이서 하나씩 붙들고 먹는데 웃음이 난다. 이것은 과연 간식으로 판매하는 것인가, 우리가 식사를 간식으로 오해한 것인가. 알지 못한채 결국 먹다가 둘다 남겼다. 맛은 정말 좋음. 보기에도 맛있게 생겼다. 신선한 야채에 느끼하지 않은 달콤한 소스, 그 위에 사정없이 내리 꽂은 포크까지 비주얼도 훌륭하다.
이제 숙소로 간다. 구글맵으로는 걸어서 1시간이면 가겠는데, 시내버스를 탈까 하다가 마을 구경도 할겸 이번에도 걷기로 한다. 며칠전 오슬로에서 숙소 가는 길처럼 오르막길만 아니길 바라며, 케밥향(양파냄새)을 입안 가득 담고 간다.
아까 지나온 호수공원 반대편으로 걸어가는데 갈매기 무리와 비둘기 무리를 만났다. 개체수가 엄청나다. 재미있는 건 갈매기는 갈매기끼리, 비둘기는 비둘기끼리 모여 논다. 당연한 일인가. 서로의 영역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갈매기는 호수쪽, 비둘기는 광장쪽. 먹을거리에 따라 영역이 정해진건지. 흥미로운 광경이다. 문득 스웨덴 스톡홀름 노천카페에서 우리 빵을 물고 달아난 갈매기가 생각난다. 탄수화물 좋아하는 갈매기.
평지가 이어지겠지, 라는 우리의 바람은 5분만에 무참히 날아갔다. 호수에서 바라본 산중턱의 보기에 예쁜 집들이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인가보다. 어쩜 오슬로보다 더 가혹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다시 시내로 내려가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끝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주택 지붕이 우리가 걷는 길 아래로 보이는 것만 봐도 베르겐은 소위 산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리그(Grieg)가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걸까. 산동네는 자고로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이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묵묵히 오르막길을 걷고 또 걷는다. 걸어올라온 아랫동네와 걸어가야할 윗동네를 번갈아 보다가 잠시 친구랑 마주보고 웃는다. 훗날 노르웨이를 떠올리면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 친구랑 나는 대화할 기운을 아껴 숙소까지 무사히 걸어가자는 무언의 약속을 한다.
산중턱까지 올라온 듯한데, 이정표가 떼로 나온다. 저게 몇개냐.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인근에 대학병원도 있나보다. 구글맵에 그 병원 안쪽으로 지름길이 있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다. 뭔가 쎄~ 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름길에 대한 유혹을 참지 못하고 병원 안쪽으로 들어간다. 골목 끝까지 가니 막다른 길이다. 심지어 삼면이 높은 옹벽으로 둘러싸여있고, 한쪽은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구글맵을 돌리며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이 대학교 학생인 듯한 사람이 기숙사 쪽으로 들어가는 철문을 열어준다. 철문을 통해 기숙사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숙사 뒤로 난 계단을 이용해 차도가 있는 윗길로 나갈 수 있었다. 그 학생도 웃으며 우리를 배웅해주는 것을 보니 여긴, 일반인들이 다니는 통행로는 아닌가보다. 구글맵이 막힌 길을 지름길로 안내해주다니. 모험을 장려하는 것인가. 무튼.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는데는 성공이다.
2021.1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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