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
1시간이 걸린다던 구글맵의 예상을 깨고 약 2시간이 걸려서 드디어 숙소 인근까지 걸어왔다. 베르겐 시티투어용 2층버스 Hop On - Hop Off 종점이 여기있네. 게다가 조금 더 올라가면 관광용 케이블카 도착지도 나온다. 우리가 대체 산동네를 얼마나 오르고 오른 것인지, 터미널이란 터미널은 죄다 만나는 중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2시간 동안 걸어올라온 우리의 체력과 정신력에 기특하다 못해 자부심이 솟을 정도다.
시티투어 여행사 직원인 듯한 분께 길을 물어보니 여기서 15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숙소가 나온단다. 우리가 베르겐역에서 2시간 동안 걸어 올라왔다고 했더니 눈알을 크게 한번 굴리더니 동그랗게 치켜뜬다. 여기서 10분만 더 가면 베르겐 시내를 조망하는 전망대(산 꼭대기)가 나오는데 베르겐 시내에서 여기까지 걸어 오는 사람은 처음 본단다.
정말 10분쯤 올라가니 작은 나무테이블과 벤치가 마련된 전망대가 나온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본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멋진 전망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차를 타고 올라왔다면 지금만큼의 감동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친구와 서로 나눈다. 우리가 저기서부터 걸어온거지? 수고했어, 잘했어, 토닥토닥.
5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8시가 다 되어간다. 베르겐 구경은 제대로, 정말 제대로 했다. 헉헉대며 리셉션 직원에게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어쩜 이렇게 높은 곳에 숙소가 있냐고 하니 숙소 바로 앞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단다. 아마 우리가 걸어온 길 반대편으로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가 있었나보다. 구글맵으로 도보 경로만 조회했으니 우린 알지 못했을 뿐이지, 모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더러 걸어왔냐면서 아까 여행사 직원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음료를 한잔씩 건넨다. 마음속에 은근한 자부심이 다시 꿈틀댄다. 잘은 모르지만 내 안에 유럽인들의 체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나보다. 이런 마음이 드는걸 보면.
숙소 방에 짐을 내려놓고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내일 먹을 간식을 사고 4천원짜리 조그만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었다. 맛있다. 호스텔 내부 바에서 간식을 먹으려는데 음료와 티, 커피, 간단한 스낵도 서비스로 준다. 잠시 쉬면서 군것질을 한다. 수다쟁이 바텐더 덕분에 우리는 어~ 오호! 하하하~ 뭐 이런 간단한 리엑션만 하면서 이것저것 잔뜩 집어먹는다.
방에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몸 상태가 또다시 리셋된다. 친구는 숙소에서 쉬겠다고 해서 나는 야경보러 혼자 잠시 밖으로 나간다. 아까 그 전망대 쪽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꽤 나와있다. 역시 전망대는 야경이다. 베르겐(Bergen) 야경도 참 예쁘다. 저 멀리는 바다가 보이고, 오목하게 도시가 들어서있는 모양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도보다 주변 도시들이 더 정겹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외지인들이 많고 그래서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 드는 수도보단 진짜 현지인들의 일상을 볼 수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베르겐도 그런 곳 인듯하다. 오슬로보다 친절하고 여유롭고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베르겐에서의 첫날이자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베르겐 시가지를 둘러보고 다시 오슬로(Oslo)로 돌아간다.
멋진 페리호 선장님과 패셔너블한 고속버스 기사님과 위대한 작곡가 그리그가 있는 도시 베르겐(Bergen), Good night!
2021.12.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