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
브리겐(Bryggen)을 지나 항구의 더 끝자락으로 가다보니 13세기에 돌로 만들어진 베르겐 요새(Bergenhus Fortress)가 나온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성곽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며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근처에 역사박물관(The King Hakon's Hall)도 있고, 대략 3~4개의 박물관이 이 부근에 모여있는 듯하다. 여기도 오늘이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공원 안내판 앞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네명의 여성분을 본게 전부이다.
베르겐에 와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베르겐 사람들은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르겐 출신 사람들은 본인을 '노르웨이 사람'이라 소개하지 않고, '베르겐 사람'이라고 한다는 거다. 오슬로 출신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라서 사실 신빙성은 담보하기 어렵지만, 베르겐에 와서 내가 느낀 것도 그것과 유사하다. 뭔가 내가 베르겐 사람이라도 자부심이 생길것만 같은 느낌?
성벽 주변 공원을 걷다보면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여러개 있다. 아래 건물은 뮤지컬 맘마미아 세트장 같다. 아이보리색 건물에 하늘색 문과 하늘색 창틀이라니. 낭만적이다.
항구와 맞닿은 바다까지 걸어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저기 정박해있는 배는 유람선인가보다. 초록이 가득한 잔디밭에 잠시 앉아본다. 잔디가 워낙 빽빽해서 앉아있어도 바지에 흙이 묻지 않을 정도다. 오늘은 햇살이 정말 좋다.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쳐드는 모습에 계속 눈이 간다. 키가 작은 나무 아래 열매가 한가득 떨어져있다. 누가 흔들었나. 그냥 떨어진거라고 보기엔 열매가 너무 작은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 기차 시간까지 1시간쯤 남았다. 부두 반대편 수산시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물고기들의 고향 노르웨이의 고기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어느 항구에나 있는 수산시장이다.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고, 판매하는 수산물들이 정말 크다. 연어, 킹크랩, 고래고기까지. 노르웨이가 주 산지니까 당연한 것인가. 기웃기웃 거리며 큰 물고기들을 구경하노라니 주인장이 회를 한점 떠서 먹어보라고 내민다. Whale Meat! 고래고기! 옴머! 해외에서 날고기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여행 중 날것 먹고 식중독 걸린 아픈 기억 때문에. 친절한 사장님 노땡큐.
브리겐 건너편 부두는 마치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를 떠올리게 한다. 부둣가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고,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도 있고, 지도를 꺼내 보는 사람도 있다. 바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브리겐(Bryggen)은 아기자기한 장난감 블럭마냥 예쁘다. 아마도 브리겐을 건너다 보라고 이쪽편에 벤치를 여러개 마련해뒀나보다. 우리도 잠시 앉아 경치를 감상한다.
나이 지긋한 중년부부가 우리 앞에 걸어간다. 여행중이신듯 남자분은 큰 배낭을 메고, 여자분은 작은 백팩을 멨다. 어디서 오신, 어떤 이야기를 품은 분들일까 궁금하다. 그리 험하지 않은 평안한 삶을 살아오신, 그리고 살아가실 분들이길 바라본다.
베르겐이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시대별 선원들의 모습 변천사를 동상으로 제작해 둔 작품(Sailor's Monument)이 항구 인근에 있다. 베르겐 사람들의 항구와 배, 뱃사람에 대한 자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념비가 아닌가 싶다. 선원들의 역사를 동상으로 제작해둔 곳은 처음이다. 4개의 면이 시대 순으로 되어있는데 돌아가면서 모두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한장 밖에 남은 게 없다. 아쉽네.
다시 중앙 호수공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작곡가 그리그(Grieg)의 동상이 있다. 앞모습, 옆모습 이리저리 돌아가며 사진에 담아간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인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의 천재 작곡가. 그리그의 동상이 있는 이 공원은 베르겐 최초의 공공 공원인 Byparken, 시티공원이다.
그리그 동상 앞 쪽에 설치된 아름다운 꽃과 다채로운 식물들로 장식한 파빌리온(Musikkpaviljongen)도 근사하다. 그리그 동상이 바라보는 곳에 자리한 중세시대 건물은 노르웨이 서부 미술관(West Norway Museum of Decorative Art)이다. 짙은 붉은색 벽돌에 짙은 회색 돌로 테두리를 장식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축이다.
베르겐에서 짧지만 밀도있는 이틀을 보내고 우린 다시 오슬로(Oslo)로 간다. 오슬로에서 다시 하룻밤을 자고, 모레 비행기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간다. 1주일 전에 여행을 급하게 결정하고 얼렁뚱땅 시작한 북유럽 여행이 이제 거의 막바지다. 계획이 없는 여행이 때로는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한다. 관광지가 즐비한 도심보다 이렇게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소도시 여행도 참 좋다.
잠깐 공원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대체로 논리적이지 못한 내 엉성한 마음을 그대로 내어놓아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나만큼 비논리적인 친구가 이번 여행의 동행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여행은 생각이 아닌 감정으로 하는 것이리라! 꼭 다시 한 번 와서 여유롭게 머물다가고 싶은 곳이다. 베르겐(Bergen), 이름에서 조차 음악적인 울림이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같다.
2022.1.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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