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나, 영원한 아이ㅣ에곤 실레 (ft.화가의에세이)

728x90
반응형

나, 영원한 아이, 2018, 알비 출판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인생이나 그림에 대해서는 꽤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정수를 이해할 수 있는 시나 편지, 텍스트로 이루어진 작업물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저 역시 에곤 실레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에서 실레의 글을 처음 접합니다. 실레는 시 역시 그림을 그리듯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밀한 감성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꾸밈없이 글로 써냅니다. 

 

에곤 실레의 짧은 에세이 23편을 엮은 <나, 영원한 아이; Ich Ewiges Kind>입니다. 에곤 실레 그림의 주요 주제는 인간 실존을 둘러싼 것들, 혹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레의 글도 그렇습니다. 에곤 실레의 삶을 관통하는 내밀하고 치열한 감정을 실레의 텍스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반응형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전체 4페이지의 길이인데 그 중 마지막 한 페이지를 올려봅니다. 한 문장 한 문장, 단어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이토록 깊고 내밀한 통찰을 지닌 예술가의 글과 그림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따름입니다.  

 

그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기만은 '계산'이 발명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행동이다. 

말은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행동이다. 

 

그렇다면 말들은 어디로 날아가는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가뿐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유일하다.

 

구하라!

액자도, 상품도, 작업도 아닌 '그림'을.

그림은 무엇인가?

내게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닌 내 밖의 것이다. 

나를 사라... 그 조각들을.


예술은 사랑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모른 것이 쓰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의 보편성과 시대를 관통하는 한 곡의 음악들이다. 

실레는 사랑하는 자였다. 

우는 자였고, 웃는 자였다. 

그는 다시 찾을 봄을, 그리고 영원히 돌아갈 내면의 고향을 바라보았다. 

 

(우) 체크셔츠를 입은 자화상, 1917

 

역자의 글입니다. 에곤 실레를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실레의 기괴한 듯한 드로잉을 처음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의 그림과 그의 인생에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의 역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실레의 그림에서와 같은 기묘한 선을 뽑아낼 수도, 알아챌 수도 없을것입니다. 

 

'자화상을 위한 스케치'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 입니다. 에곤 실레의 글을 제 얕은 통찰의 깊이로 평론하거나 해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이 페이지에서 멈춰졌습니다. 생각의 형태로 구체화되지 못한 제 안의 그것들이 실레의 글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 듯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에겐 의무만 남은 죽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런 나 자신이 불쌍했다. 

이 시기에 나는 아버지가 살았던 죽음의 세계를 경험했다. 

 

한편 순진무구한 선생들은 언제나 나의 적이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궁극적인 감각, 그것은 종교와 예술 아닌가. 

자연은 중간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신이 존재하는 곳이며, 나는 그를 강하게, 

더욱도 강하게, 저 끝까지 느끼고 있다. 

 

나는 '현대'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나는 '영원한' 예술만이 존재할 뿐이라 믿는다. 


이 책의 역자는 분명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단상들을 써낼 수 없을테니까요. 예술가에게 걸림돌은 역자의 말처럼 '끊임없는 두려움' 입니다. 사람들의 시선, 권력, 돈의 굴레는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을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입니다. 에곤 실레는 '영원한 아이'의 힘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눈 뜬 자는 

두 번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어떤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글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마치 성경책이 우리에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듯이, 저는 이 문장이 그렇게 와닿습니다. 한 번 눈 뜬 자는 두 번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21.12.

글약방her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