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전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1971)의 <섬> 입니다. 장 그르니에는 파리 출생의 프랑스 소설가이자 철학자로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제자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알베르 카뮈가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카뮈는 20살이었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이 추천사(책 뒷 표지에도 적혀 있음)를 보고 책을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래 페이지가 카뮈의 추천사(p5-14) 중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이 추천사를 읽었는데 카뮈의 말에 저 역시 크게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p14)
이 글을 보면 카뮈가 스승 장 그르니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추천사'라기 보다 러브레터에 가까운 극찬이 담겨 있습니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저 역시 이 책 <섬>에서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계시적인 순간을 몇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몇년 후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또 다른 계시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비유가 나옵니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는 수의에 빗댄 어린아이의 배내옷 비유가 그와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난스러운 순간', '기묘한 상태들'과 같은 표현들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거듭난다'라는 것에 대해 헤르만 헤세와 장 그르니에 모두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듯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이 세상의 헛됨을 불현듯 깨닫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떠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그러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요구하는 바는 너무나 잔혹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라는 단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병에 걸리는 일 뿐이다."
음.... 이 부분을 여러번 다시 읽었습니다. 표면적인 의미만을 받아들인다면 이상한 글의 전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제게 저 문단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가끔 동료들이 '심각하지 않은 병으로 한 6개월만 휴직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속 뜻을 깊이 들여다보면 잔혹한 노동에 지친 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한다. 쌓아가야 할 경력이니 창조해야 할 작품이니를 말한다. 요컨대 어떤 목적을, 하나의 목적을 가지라고. 그러나 이런 단계는 내 속에 가장 깊이 잠겨 있는 것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가장 미천한 조건 속에서, 그리고 송두리째 은총의 결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인간이 갖는 목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고, 또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시간에 좌우되는 우리 인간의 목표가 그것을 달성했을때 어떤 깊은 가치를 내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송두리째 은총의 결과'로 얻은 것만이 진정한 충만함을 주는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혼자 낯선 곳을 여행하기를 즐깁니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물리적인 공간을 위주로 하는 여행은 못하고, 배움, 독서, 취미 등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느닷없이 자유를 느낄때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이나 영국 런던 같은 고도화된 도시들, 혹은 동양인이 한 명도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쓰는 서양의 시골마을 같은 곳에서 뭔가 모를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누리곤 합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장소, 그저 나 이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말이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자기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그 여행의 완성을 위해, 완성을 꼭 해내기 위해 어쩌면 저 역시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저만의 여행(다양한 형태의 여행, 독서, 연구, 학업, 이사, 취미, 사귐 등)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지점이 어디이건 자기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동안 밟고 올라왔던 긴 사다리를 밀어버릴 수 있겠지요.
2021.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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