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
왕궁이 있는 섬으로 건너오니 마음이 놓인다. 숙소는 왕궁 바로 옆인데 이번에는 섬 뒷편 다리를 건너와서 이쪽은 왕궁 쪽이랑 분위기가 또 다르다. 역시나 여기도 시위 통제선은 있는데 지나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여기서부터 오르막길을 가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숙소가 나온다. 사진의 가운데 우뚝 솟은 건물이 스톡홀름 대성당(Storkyrkan)이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고있으니 아까 시위현장에서 놀란 가슴이 좀 진정되는 듯하다. 이 곳은 스톡홀름의 구시가(Old Town) 감라스탄(Gamla Stan) 지구인데, 섬 전체가 동그란 언덕 모양을 하고 있다. 그 가장 높은 지대에 조그만 광장이 있는데 신호등 색깔의 폭이 좁은 건물들이 광장 한편에 모여있다. 오래전 스톡홀름의 중심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아늑한 광장이다. 그림이나 기념사진으로 많이 남아있는 매력적인 풍경이다.
아래 건물은 올드타운 Stortorget 광장에 있는 노벨 기념관(Nobel Prize Museum)인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에 관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웨덴은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승인을 해준 역사가 있다. 그 이유로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노벨기념관이 있다. 이곳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기록도 남아있다. 광장에서 한동안 옛 스톡홀름의 정취에 젖어 사람 구경도 (서로)하고, 스톡홀름 구시가의 냄새도 맡고, 한량처럼 벤치에 늘어져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일단 숙소가서 체크인 하고 다시 나오기로 했다. 드디어 숙소 도착 17:30분. 내가 체크인 폼을 작성하는데 주소를 보더니 데스크 직원이 대뜸 런던 킹스턴(Kingston)에 사냐면서, 자기 고향이란다. 오. 문득 유럽인들은 세상을 참 넓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오늘 우리가 묵을 방은 28인실, 심지어 남여공용. 한마디로 최악. 7,8월에 북유럽 지역은 예약이 일찍 차기 때문에 우리처럼 계획 없이 여행하는 경우는 이런 불상사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방에 가니 역시 2층 침대 딱 하나가 비어있다. 친구가 1층 나는 2층. 방을 슥 둘러보니 방에서 쉬고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남여공용 방이라 그런가 냄새가 조금 역하다. 뭐 어쩔 수 없지. 친구랑 나는 어젯밤 크루즈에서의 안락한 침실을 상상하며 이곳에서 이틀 밤을 버티기(!)로 했다. 하루 숙박비가 우리 돈으로 3만원도 안하니까, 이정도 컨디션도 감사하다. 침대 세팅해놓고 다시 나왔다.
오늘은 시위대에 시달리고 오래 걸어서 고단하니 저녁은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밤에 보는 올드타운 골목은 더 분위기 있다. 상점들도 반짝반짝. 8월인데 크리스마스 느낌. 인테리어가 맘에 드는 이탈리안 식당으로 픽하고 들어가서 피자랑 파스타, 친구는 와인 나는 주스를 주문했다. 먹다가 올리브피클이 넘 맛있어서 하나 더 주문했는데, 나올때 계산서를 보니 저 조그만 올리브 10알에 8천원이다. 저렇게 저녁식사한 금액이 토탈 12만원. 흠.
배부르니 산책 겸 다시 발길 닿는데로 걸었다. 이제 시위대도 다 해산하고 섬에 연결된 다리들도 통제가 풀렸다. 해질녘인데 바람은 안 불어서 낮에 다닐때보다 덜 추운 듯하다. ABBA박물관이 있는 유르골덴섬(Djurgarden)까지 연결되는 트램도 다니고, 시위대가 뛰어다니던 낮 풍경과 한결 다른 차분한 밤거리다.
낮에 한창 시위대가 몰려있던 왕의정원에 있는 분수대(Forumdammen)인데 역시 쓰레기로 엉망이다. 청소하는 사람들이 쓰레기 치우느라 분주하다. 내일 낮에는 깨끗하고 조용한 공원을 한바퀴 둘러봐야겠다.
하늘 정말 멋지다. 크고 작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의 야경은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도 하늘과 바다가 근사하게 어우러져있다. 낮엔 시위대 피해서 반대편으로 돌아가느라 건너지 못한 의회쪽 메인 브리지를 건너 숙소방향으로 간다.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야경에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밤 거리를 걷는다.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야경에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밤 거리를 걷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오늘 밤 묵을 곳이 있고, 배부르게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일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 하루에 충실한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을 여행을 하며 배운다.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지금, 바로 여기로 데려온다.
2021.1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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