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경의학자이자 교수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의 생전 마지막 에세이 <의식의 강 The River of Consciousness>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라는 신경과학 분야 책으로 유명한데 저도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의사로 일하면서 단순히 병을 다루기보다 인간의 인지나 의식 기억이나 자아 같은 철학적 소재들을 다층적으로 조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의 표제인 '의식의 강'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가 도입한 용어로 생각이란 흐르는 것이라고 여긴 그의 사상이 집약된 개념입니다.
<의식의 강>에는 모두 열한 편의 에세이가 수록돼 있으며 과학과 철학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의식의 흐름, 기억과 왜곡,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의미, 신경학적 질병과 예술적 창의성, 시간의 왜곡 등 독자가 흥미로워할 만한 여러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다윈을 통해 나의 생물학적 독특성과 내력, 다른 생명 형태와의 생물학적 혈연관계를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이 지식은 내 마음속에 뿌리내려 자연을 고향처럼 느끼게 하고 나만의 고유한 생물학적 의미를 알게 해 준다. (p37) _'다윈에게 꽃의 의미는?' 中
올리버 색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생명의 지속성과 모든 생명은 하나의 조상에서 진화한 서로 연관된 개체임을 이해합니다. 이로써 자신은 자연을 고향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온기있는 문장이 역시 올리버 색스 답습니다.
우리의 정신이나 뇌 속에 기억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매커니즘은 없는 것 같다. 고도의 주관적 방법으로 여과하여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p133-134) _'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中
기억의 오류에 대해 쓴 장에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남에게 들은 건지, 읽은 건지, 꿈에서 본 건지, 실제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뒤섞인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때문에 유연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역시 인간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존재입니다.
인간의식은 모든 개인의 의식에 주제적으로나 개인적인 연속성을 부여한다. 의식이란 늘 능동적이고 선택적이기 마련이므로 모든 감정과 의미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나만의 7번가'이며 거기에는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이 가미되어 있다. (p197) _'의식의 강' 中
표제작인 '의식의 강' 역시 흥미롭습니다. 올리버 색스가 7번가의 한 카페에 앉아 경험하는 1,000가지가 넘는 가능한 지각 중 자신의 주의를 끄는 것에만 주목한다는 점을 예로 들며 우리 각자는 모두 자신만의 우주에 산다는 논리를 끌어냅니다. (오호)
이러한 경험의 특이성과 개체의 독특성을 이해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의외로 쉽게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아는 것과 실행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
<의식의 강>을 통해 서로 겹치고 뒤섞여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저의 의식세계가 올리버 색스의 따뜻한 '의식의 강'과 조금은 겹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2025.6. 씀.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ㅣ올리버 색스, 신경정신의학 (알마)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ㅣ올리버 색스, 신경정신의학 (알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다콩이 행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시원한 타일이나 대리석 바닥만 찾다가 이젠 카펫
2020ilovejesu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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