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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를 읽고ㅣ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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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한 시대를 잠시 살다 간 요절한 천재 작가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독일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1947)의 단편소설과 시를 엮은 <이별 없는 세대 Generation ohne abschied>입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함부르크 출신으로 열다섯에 시를 쓰기 시작해 16세에는 '기사의 노래'라는 시가 일간지에 실립니다.

 

일찍이 작가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고 이후 투옥과 전장을 오가는 가혹한 생활로 병을 얻습니다. 1945년 프랑스군 포로로 수용소 이동 중 탈주하여 함부르크로 돌아오지만 병의 악화로 결국 1947년 스물여섯에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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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르트의 작품 대부분은 죽기 2년 전 병상에서 집필한 것들로 <이별 없는 세대>의 표제작 역시 1946년 입원 후 쓰였습니다. <이별 없는 세대>에는 25편의 단편과 14편의 시가 수록돼 있는데 시는 <가로등, 밤, 별들>이라는 시집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단편 「이별 없는 세대」는 운문처럼 짧은 문장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의 분위기가 바뀌고 서사 역시 방향을 바꾸어갑니다.  

우리는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p95)

「이별 없는 세대」는 첫 문장에서부터 절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진 바람이 몰아칠 때 의지할 신도 없는 세상으로 내쫓긴 세대입니다. 어린 시절 울타리에서 쫓겨난 마음은 고향도 없이 집시처럼 떠돌고 짧은 만남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은 자취도, 속박도, 이별도 없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나치 독일을 살았던 당시 젊은이들의 무력감과 절망이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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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도착의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사랑에, 새로운 웃음에, 새로운 신에게 다다르는 도착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p98)

인간이 저지른 처참한 참극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문학가에게 전장은 무엇이었을까요. 예민한 감수성만큼 몸과 마음이 예리하게 찢기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 없는 세대」의 마지막에서 보르헤르트는 새로운 도착을 이야기합니다. 

<이별 없는 세대>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보르헤르트가 '신'에 천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해석해내기기 어려운 시대상황에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신' 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6년이라는 짧은 생애의 거의 절반을 전장에서 보낸 그의 작품에는 나치 독일의 탄압과 그들의 만행이 원초적 모티프로 작용합니다. 절망, 분노, 눈물이 저변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거칠거나 공격적이거나 우울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과 평화, 저항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보르헤르트의 글이 이미 고전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세계에서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2025.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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