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나상호 교무의 설교집 <큰길로 가라>입니다. 기독교나 불교에 관해서는 서적도 많고 영상자료도 다양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원불교는 그렇지 않아 상대적으로 매우 낯선 종교입니다. 원불교와 불교의 차이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원불교 교전에 앞서 설교집을 먼저 읽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기회가 닿았으니 펼쳐봅니다.
우선 나상호 교무는 원기 75년인 1990년 원불교 교무로 출가하였으며 원불교와 관련한 여러 저서를 쓰신 분입니다.
** 원기: 원불교의 연대 기년법으로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일(1916년)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즉 2025년인 올해는 원기 110년인 것이죠.
<큰길로 가라>에는 전체 스물한 편의 설교가 수록돼 있는데 몇몇 생소한 원불교 용어를 제외하면 원불교도가 아닌 일반인이 교양서로 읽고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책입니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다는 저자의 서문 말씀대로입니다.
"원불교에 와서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십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니라." (p25)
** 대종사: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를 말합니다. 1891년 조선시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16년 대각을 이루고 26세에 원불교를 창시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원불교를 찾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인간이 생을 통해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깨달으면 불생불멸의 이치와 인과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된다며 그 이후에는 마음이 경계를 당해도 요란하지도 어리석지도 그르지도 않게 된다고 대종사께서 말씀(대종경 교의품 27장)합니다.
** 대종경: 원불교 교전은 기독교의 성경과 같은 것으로 기본 경전인 '정전'과 소태산 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으로 크게 구성됩니다.
마음에 '본래 마음'이 있고 '일어난 마음'이 있습니다. 무시선법에서 본래 마음을 "원래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각자의 성품"이라 하고 그 성품을 깨달아 얻어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가 선(禪) 공부라 했습니다. 일어난 마음이란 경계를 따라서 일어난 요란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그른 마음을 말합니다. (p31)
원불교에서는 그래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 아래 마음공부를 중요시합니다.
대종사께서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 버려라. 그러면 그 업이 쉰다. 그렇지 않고 네가 지금 갚으면 그 업을 되갚는 윤회의 수레바퀴가 쉼 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이게 나의 죄업을 임의로 하는 "천업을 돌파한다."라는 원리입니다. (p35)
갚을 차례에 참아버리면 그 업이 쉰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하면 갚고 되갚는 수레바퀴가 쉼 없이 돌고 도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으면'이 아니라 '참아버리면'이라는 표현이 더없이 적확하게 들립니다.
소위 K-종교라고 일컬어지는 원불교의 가르침은 여러 종교를 종합해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둥그렇고 원만한 원불교의 가르침대로 온 세상이 둥그렇고 원만하여지길 바라봅니다.
<큰길로 가라>라는 표제를 보자마자 마태복음서의 '좁은 문 좁은 길'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이 두 가지 표현은 결국 같은 함의를 갖고 있음을, 그래서 배치되지 않는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설교 잘 들었습니다.
2025.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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