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1920-1994)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Hell is A Closed Door>입니다. 부코스키의 생전 마지막 출간작이자 대표시집인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1992)>이 국내에서는 <창작 수업>과 이 시집 두 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좀 더 정돈(!)된 제목인 <창작 수업>을 먼저 읽고 자연스럽게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를 집어듭니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 배를 곯을 때는 / 지옥은 닫힌 문이다 /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 그 너머가 얼핏 / 보이는 /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 작가만큼 /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 없다 _'지옥은 닫힌 문이다' 中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콧구멍만 한 방에서 글을 쓰던 시절을 묘사한 '작가'라는 시에서도 지옥과도 같은 삶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다 마흔아홉 살에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부코스키에게 작가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없다'라고 까지 표현했을까요. 다행히 이 시를 쓰던 만년의 작가 부코스키에게 지나간 고난은 추억이 됐겠지만 말이죠.
죽음 그까짓 거. 이봐 형씨들 / 힘든 건 / 삶이라네 (...) 그래도 이봐, 난 아직 / 운이 좋아 /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 글이라도 쓰는 게 / 아예 못 쓰는 것보다는 / 낫잖아 _'세르반테스는 오직 하나' 中
일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작가의 벽에 부딪힌 부코스키가 여든에 명작을 쓴 세르반테스를 기리며 쓴 시입니다. 벽을 만났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부코스키를 살아 있게 하는 인생 전체와도 같습니다.
순탄치 않은 굴곡진 인생을 살다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전업 작가로 이름을 알린 부코스키에게 쉰 살 이전의 삶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글감과도 같습니다. 그의 글은 지루할 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닮아 거칠고 생생합니다.
부코스키 시선집에서 관념적인 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해낸 것 같다 / 다행히도 / 참 우라지게 복도 / 많지 _'불씨' 中
일흔을 앞둔 시인 부코스키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하급 노동자로 살며 마음에 품었던 작가라는 불씨하나를 그래도 꺼뜨리지 않고 살려냈다는, '우라지게 복 많은' 인생으로 말이죠.
짝짝짝.
2025.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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