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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쥴퓌 리바넬리의 「마지막 섬 The Last Island」을 읽고ㅣ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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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출신의 작가이자 작곡가이 정치인 쥴퓌 리바넬리(Zulfu Livaneli, 1946년생)의 장편소설 <마지막 섬 The Last Island>입니다. 오르한 파묵과 함께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쥴퓌 리바넬리는 1970년대 튀르키예에서 정치범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며 이후 터키를 떠나 약 11년 간 망명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1984년에야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정치적 활동과 세계 평화에 대한 기여로 유네스코 친선대사로도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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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쥴퓌 리바넬리의 작품에는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인물, 사건들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책 <마지막 섬>은 유토피아적인 세상에서 정치적 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절대 비밀'로 지켜왔던 그 지상 낙원에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정중앙에 있는 건 다른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섬이었다. (p13-16)

 

<마지막 섬>은 잣나무 숲,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 순백의 갈매기들이 있는 낙원으로 묘사됩니다. 평화로운 이 섬에 본토에서 장기집권 후 사임한 대통령, '그'가 정착하기 위해 들어옵니다. 섬의 주민들은 그저 휴가 차 온 것이라 순진하게 여기고 '그'를 맞이하고 그날부터 섬은 디스토피아로 변해갑니다. 

 

 

마음속 한구석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 나는 모든 섬 주민들이 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p36)

 

<마지막 섬>의 주민들은 심지어 '그'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라는 감정을 남깁니다. '그'와 인사를 나누지 않은 유일한 섬 주민은 소설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아마 그 소설가가 쥴퓌 리바넬리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보입니다. 

 

 

 

전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우리 삶에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더 각인시키려고 했던 반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지 않으려 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우리의 모습은 분명 극도의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75)

 

섬은 조금씩 '그'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민들 가운데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날 건드리지 않는 뱀이라면 천 년을 살아도 돼!'라는 식의 안일함으로 '그'의 폭압과 독재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이런 섬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섬에 살면서 미개인이 되어버렸다고 자조적으로 평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쉴 곳을 잃은 갈매기들이 사람들ㅡ정확하게는 '그'의 손녀ㅡ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갈매기를 쏘아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후 갈매기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몸을 던져 기왓장을 깨고 물고 온 큰 돌을 떨어뜨려 섬 주민들을 공격합니다. 섬은 피로 물듭니다.

 

이후 '그'의 악행은 점점 수위를 높이고 주민들은 때론 동조하고 때론 외면하며 그의 권위주의 정치에 힘을 실어줍니다. 

 

 

결국, 모두가 패배했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자신들을 건드릴 사람 하나 남지 않은 갈매기를 제외하곤 말이다. (p286)

 

마침내 철저한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마지막 섬>의 승리자는 처절하게 저항하고 악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갈매기뿐이었습니다. 

 

 

 

쥴퓌 리바넬리는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작가와의 질의응답'에서 악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대항하지 않는 모두는 그 악행에 일정 부분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희생을 무릅쓰고도 필사적으로 저항한 갈매기들만이 승리한 <마지막 섬>의 결말을 통해  처음부터 '아니'라고 해야한다며 저항은 고귀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소설의 제목 <마지막 섬>은 '마지막 은신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의 상징입니다. 유토피아에서 시작해 디스토피아로 끝나는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수도 있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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