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퓌 리바넬리(Zulfu Livaneli)의 「어부와 아들 Balikci ve Oglu」을 읽고
너무나 실제 같아서 소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일은 왠지 실화일 것만 같은 작품, 쥴퓌 리바넬리(Zulfu Livaneli, 1946)가 2021년 발표한 소설 <어부와 아들 Balikci ve Oglu>입니다. 완벽한 작품이라는 표현을 에둘러 이렇게 써봅니다.
쥴퓌 리바넬리는 튀르키예의 대표 지식인으로 국제, 사회 등 다양한 방면에서 목소리를 내는 글을 써 왔습니다. 이 소설 <어부와 아들> 역시 난민이라는 국제적 이슈를 다루는데 모성애와 부성애,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감수성으로 접근합니다. 쥴퓌 리바넬리는 '메시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늘 독자 몫의 '메시지'가 담깁니다.
<어부와 아들>의 주인공은 튀르키예의 에게해와 맞닿은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무스타파와 메수데 부부입니다. 무스타파는 고되고 힘든 바닷일이지만 묵묵히 감당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로 그에게 바다는 직장이고, 삶이며, 연인입니다.
바다는 포악했고, 과묵했다. 바다는 다정하기도 했고 분노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어부를 굶어 죽게 할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한없이 내어줬다. _「어부와 아들」 가운데
어린 아들 데니즈를 바다에서 잃은 무스타파에게 바다는 또 다른 '데니즈'를 데려다줍니다.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데니즈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에 무스타파는 당국에 허위 보고를 하면서까지 아기를 품으려고 합니다.
"무스타파, 이 아기는 뭐야?" / "데니즈." / "바다가 우리 데니즈를 데려갔지만, 우리에게 다른 데니즈를 준 거야. 내가 전부 다 말해줄게. 지금은 이 아기를 살려야 해." _「어부와 아들」 가운데
아기 '데니즈'에 관한 소문은 오래지 않아 작은 어촌마을에 파다하게 퍼지고, 무스타파와 메수데는 체포 위험에 처합니다. 그 와중에 아기 '데니즈'의 엄마까지 등장하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마을은 잠들어 있었다. 자고 있을 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깨어나면 사람들은 악마와 다를 바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약점을 찾아다녔고, 늘 자신과 친한 사람의 흉을 봤다. 특히 좁은 동네에서는 친한 사이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뒤돌아서면 온갖 흉을 다 봤다. _「어부와 아들」 가운데
목가적인 전원 마을, 순박한 어촌 사람들, 시골 인심같은 것들에 대한 환상이 파사삭 무너지는 묘사입니다.
<어부와 아들>은 이후 믿을 수 없는 일들,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긴장감 속에 쉼 없이 이어집니다. 무스타파의 마음으로, 메수데의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심장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겐 구원이자 감사인 일이 누군가에겐 더 없는 비극임을 알게 됩니다. 온전한 구원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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