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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루시아 벌린(Lucia Berlin)의「청소부 매뉴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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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벌린(Lucia Berlin)의 「청소부 매뉴얼」을 읽고


조용히 몇몇의 팬들과만 소통하던 루시아 벌린(Lucia Berlin, 1936-2004)을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밀어 올린 작품입니다. 저자 사후 11년이던 2015년 출간된 <청소부 매뉴얼 A Manual for Cleaning Women>로 총 서른세 편의 단편을 모은 65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단편집입니다. 

 

가끔 이렇게 사후에 명성을 얻는 작가들을 보면 결국 될 일은 된다는 걸 확인하게됩니다. 저는 이 책 보다 먼저 <내 인생은 열린 책>을 읽었는데 사실 그 책에 반해서 이 책도 읽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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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벌린의 단편소설에는 잘게 떼어낸 그녀 자신의 인생이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단편은 내용과 구성이 제각각인 듯하지만 결국 커다란 하나의 삶으로 수렴됩니다.

 

표제작인 「청소부 매뉴얼」에서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삶의 애환을 담담히 드러냅니다. 

 

청소부들은 사실 물건을 훔친다. 하지만 우리를 고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염려할 것들은 아니다. 결국 우리를 돌게 만드는 건 과잉 반응이다. // 내가 실제로 훔치는 건 수면제뿐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모아 두는 것이다. _「청소부 매뉴얼」 가운데

 

 

새벽같이 출근하는 청소부들은 버스정류장에서 종종 만나 잡담을 나눕니다. 자신들을 고용한 부인들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웃지만 서러운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서로 전리품을 비교하는 동안 담배를 피웠다. 그들이 훔친 것들ㅡ매니큐어, 향수, 두루마리 휴지. 그들이 받은 것들ㅡ짝 없는 귀걸이, 옷걸이 20개, 찢어진 브래지어. _「청소부 매뉴얼」 가운데  

 

그들은 종종 고용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습니다. 청소부 매뉴얼에 따르면 주는 건 무엇이든 받고 고맙다고 말한 뒤, 퇴근길 버스에서 좌석 틈에 버리고 내리면 됩니다. 즉, '선물'은 쓰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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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소위 '많이 배운' 여자라 청소부들 틈에 끼기 어렵습니다. 청소부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이 자식을 넷이나 남기고 죽었다는 말을 늦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버스가 늦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기다린다. 사회보장연금 수령, 실직수당 신청, 빨래방, 공중전화, 응급실, 감옥, 기타 등등. _「청소부 매뉴얼」 가운데  

 

이야기 그 자체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했던 루시아 벌린의 작품은 그래서인지 재미있습니다. 생의 애환을 아는 작가, 게다가 위트 있는 작가의 글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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