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 하트넷(Sonya Hartnett)의 「한밤의 동물원 The Midnight Zoo」을 읽고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하다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수많은 반려인의 바람일 것입니다. 동물과 교감을 넘어 실제 말이 통하는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 소냐 하트넷(Sonya Louise Hartnett, 1968)의 장편소설 <한밤의 동물원 The Midnight Zoo>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동유럽 체코의 어느 마을입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집시 소년 안드레이와 토마스 형제는 갓난아기인 여동생 빌마를 넣은 가방을 안고 여기저기로 피난을 다닙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몇 시간 또는 하룻밤 이상 머물지 않습니다.
가장 먹을 게 있음 직하고 가장 사람이 없음 직하고 가장 햇빛이 잘 듬 직한 길을 골라 갔다. 안드레이는 뒤에 남겨 둔 것과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야 지금 처한 상황에 너무 심각하게 빠져드는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을 한 귀퉁이에서 동물원을 발견합니다. 철창 속에는 전쟁으로 버려진 늑대, 사자, 독수리, 캥거루, 곰, 물범같은 동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말을 하잖아!" / "그래서 뭐? 우린 말하면 안 돼? 우리한텐 얘깃거리가 없을 거라 생각해?" _p.53
문득 동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귀에 들리고 소년들은 철창 안 동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게 됩니다.
안드레이는 동물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동물원 안에서만 자란 동물들이 야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동물들이 살아가야 할 곳은 자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이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 세상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곰의 말을 곱씹게 됩니다.
"물범이 바다를 기억할까?" / "당연히 기억하지, 물범은 피와 뼈가 바다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를 기억해. 저 바깥 어딘가, 바다와 바다 사이에는 빈 자리가 있어. 물범이 거기 없기 때문에 비어 있는 거지."
이 작은 동물원의 주인에겐 알리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동물들을 가둬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알리체는 늘 우리 안의 동물들에게 해안, 산, 돌풍, 빙하, 동굴 같은 자연이나 야생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할 수만 있다면 너희를 풀어 주고 싶어." 알리체는 동물들에게 동물원에 살던 동물은 원래 서식지로 돌려 보내 주어도 살아남지 못한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철창에 갇힌 동물들이 자유를 잊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안드레이와 토마스는 동물들이 갇힌 우리의 자물쇠를 열어줍니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들 용기내서 자신들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자유는 멋지지. 하지만 이게 잘하는 걸까? 동물원을 떠나면 누가 우릴 돌봐 주지? 누가 먹이와 물을 갖다 줘? 누가 지푸라기를 새로 깔아 주고? 잠은 어디서 자? 외로워지면... 누구랑 이야기해?"
토마스가 해맑은 아이처럼 팔을 쫙 벌리며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겠지! 방법을 알게 될 거야. 나도 어릴 때 신발 끈을 못 맸어. 하지만 배운 다음엔 잘할 수 있다고!"
어디로 가야할지 조차 모르는 캥거루가 남았습니다. 안드레이는 마린 삼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캥거루의 모습에서 그의 고향을 추정해내려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저자 소냐 하트넷의 캥거루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에피소드입니다.
"캥거루는 털이 짧은 걸 보니 태양이 빛나는 곳에서 온 것이 틀림없어. 다리가 긴 걸 보니 넓은 땅에서 왔고, 색깔이 칙칙하니까 그곳엔 바위와 맨땅이 있을 거야.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캥거루야?"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세 아이와 주인을 잃은 동물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아 들게 된 자유에 용기 내어 맞서봅니다.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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