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뫼르스(Walter Moers)의 차모니아 시리즈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독일의 만화가이자 소설가인 발터 뫼르스(Walter Moers, 1957)의 환상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입니다.
차모니아(Zamonia)라는 가상의 섬에 사는 공룡족에 관한 이야기로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시리즈' 중 네 번째 소설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린트부름 요새의 젊은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로 그는 자신의 대부인 시인 단첼로트의 유언에 따라 어느 천재 작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향합니다.
단첼로트 대부는 독서광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그토록 완벽한 글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며 열 페이지 정도의 원고를 언급합니다. 그 원고는 대부의 집 서재에 꽂힌 <기사 헴펠> 속에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단첼로트 대부는 미텐메츠에게 자신의 집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미텐메츠는 그의 집 서가에서 그 원고를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열 장의 약간 누런색 종이에 쓰인 것인데 짙은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대부는 내게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면서도 동시에 경고했다. 그것을 읽으면 내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분은 예언했다. 그의 삶이 달라졌던 것처럼.
독서광이 '천재 작가'라고 평한 그의 원고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원고를 읽은 미텐메츠는 우리에게 한 문장을 알려줍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문장에 대해 그것을 읽으면 막혔던 매듭이 갑자기 풀리고, 낱말들이 홍수처럼 하얀 종이 위로 쏟아져 나온다고 말합니다. 작가에게, 작품에게 이 문장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습니다. 미텐메츠는 한 시인이 생각해 낸 가장 독창적인 문장이라고 평가합니다.
미텐메츠는 이 천재 작가를 찾기 위해 부흐하임으로 떠납니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말이죠.
나는 그를 꼭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으니, 오, 이거야말로 젊은이가 갖는 무한한 신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하여 바야흐로 여기,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들어가는 경계선에서부터 이야기는 제대로 시작된다.
미텐메츠는 천재 작가의 조언을 바로 자신의 글에 대입합니다.
부흐하임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입니다. 그 도시에서는 오래된 책, 고서적들을 '꿈꾸는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과거에 존재했지만 이제는 소멸을 앞두고 있는, 그러니까 중간 상태인 잠에 빠져 있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라는 표현에 맞게 발터 뫼르스의 상상력은 놀랍도록 기발합니다. 720쪽에 이르는 분량을 미텐메츠의 모험기로 채우고 있는데 읽어버려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습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에필로그에 미텐메츠가 정리한 '시인의 일곱 가지 기본 도덕'이 수록돼 있습니다.
두려움, 용기, 상상력, 오름, 절망, 거짓말, 법의 무시가 바로 그것인데 각각에 대한 상세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낯선 개념인 '오름'은 훌륭한 작가들 주위를 감도는 아우라처럼 신비스러운 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몇몇 위대한 작가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까지 꼭 읽어보시길.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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