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올리버의 <개를 위한 노래>를 읽고ㅣ시집

 

메리 올리버(Mary Oliver, 1935-2019)의 시를 더 읽고 싶어 서가를 기웃거리다 보물 같은 시집을 발견했습니다. 제목부터 매우 직관적인 시집 <개를 위한 노래 Dog Songs>입니다. 만년에 접어든 시인이 2013년 발표한 작품으로 서른다섯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이 수록돼 있으며 모두 개에 관한, 개를 향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고양이와 살고있지만 개 역시 못지않게 좋아하는 저로서는 매 페이지마다 공감되는 포인트가 있어 미소를 머금고 읽었습니다. 

 

반응형

 

 

우리는 믿음이 깊어졌다가 / 믿음을 잃었다가 / 다시 어려움에 처하면 그것을 되찾기도 하지 / 우리는 돈벌이에 골몰하다가 / 도덕적 삶에 관심을 돌렸다가 / 다시 돈에 대해 생각을 하지 / 그야말로 갈팡질팡 / 흔들림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 우리보다는 개에 대한 말인 것 같아 / 그건 우리가 그토록 개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_「우리는 어떻고 그들은 어떤가」 中

 

매일 흔들리고 세상에 치여 상처입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반려동물이 가만히 위로해 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말이죠. 한결같은 안정감과 평안이 그들에게는 있습니다. 인간이 한결같다는 건 인간적이지 않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입니다.   

 

ㅡ

 

며칠 집을 비워야 해서 애견호텔에 전화를 걸어 / 예약을 했어. 그런데 베어가 / 그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야. // 베어가 말했어. "사랑과 반려는 모든 걸 바꿔놓는 / 장식과도 같아. 거기 가면 잘해줄 거라는 걸 / 알아. 하지만 난 슬프고 슬프고 슬플 거야." / 그러면서 애처롭게 발을 비벼댔어. // 난 여행을 취소했지. _「대화」 中

 

이 시를 읽고 마음이 저릿하지 않을 반려인은 없을겁니다. 호텔에 반려동물을 맡겨야 할 때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그리고는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일정을 취소하거나 당일에 다녀오는 걸로 정리하죠. 

 

반려하는 개나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생각하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옆에 와서 앉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자기 방에서 낮잠 자던 제 고양이가 언제 깼는지 부스스한 표정으로 제 옆에 와서 야옹거리네요. 

 

 

 

당신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몰라. 신경쓰지 않을지도 몰라 / 그래도 / 만일 이 책을 들고 있다면 당신은 이걸 알아야 해 / 내가 사랑하는 이 세상의 모든ㅡ많고 많은ㅡ광경들 / 그 목록의 꼭대기쯤에 /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 있다는 걸 _「만일 당신이 이 책을 들고 있다면」 中

 

메리 올리버는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개들이 나무라면 평생 목줄에 묶여 얌전히 걸어 다니는 개들은 의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목줄이 묶이지 않은 개들만이 건넬 수 있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야생동물들에게 위험한 현대의 도시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만.. 그러나..', 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니까요. 

 

 

내게는 잠자리가 있지. 오직 나만의. / 내 몸집에 꼭 맞는. // 하지만 가끔 꿈들은 어둡고 거칠고 섬뜩해서 / 나는 잠에서 깨어 무서워해 // 그래서 나는 달빛이 당신 얼굴을 비추는 침대로 / 기어오르고 / 이제 곧 아침이 오리라는 걸 알아. // 누구에게나 안전한 장소는 하나쯤 필요해. _「모든 개들의 이야기」 中

 

반려동물들이 집사의 곁을 안전한 장소로 여겨준다는 건 그저 고맙고 황송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그래서 반려인들이 겨울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엔 따뜻한 집사 품이 아닌 시원한 곳에서 혼자 자니까요. 반려인은 반려동물들이 주는 넘치는 사랑에도 계속 목이마른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는 이들입니다. 

---

2025.5. 씀.

---

 

[책] 천 개의 아침 A Thousand Morningsㅣ메리 올리버,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