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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 Le Roi del Aulnes」을 읽고ㅣ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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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에게 공쿠르상을 안겨준 그의 대표작 <마왕 Le Roi del Aulnes>입니다. 데뷔작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에 이어 1970년 출간한 미셸 투르니에의 두 번째 작품으로 유럽과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공인 아벨 티포주의 일기로 시작되는 <마왕>은 주인공 티포주의 삶을 통해 나치 독일이 자행한 수많은 악행과 참사를 고발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소설은 아벨 티포주가 한 유대인 소년을 만나고 시대를 자각한 후 회개하고 구제와 희생의 길로 돌아서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마왕>의 손길을 마침내 벗어난 희망과 회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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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전체 6부로 구성됩니다. 1부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은 1938년 1월 3일에서 1939년 9월 4일까지 기록한 아벨 티포주의 일기로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이후 2부에서부터는 1939년 9월 6일에 전쟁에 동원된 이후의 일을 삼인칭 시점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1938년 1월 3일. "당신은 식인귀야." 라셸은 가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식인귀라고? (p11) 

 

아벨 티포주는 아내로부터 종종 식인귀라는 말을 듣습니다. 덩치 큰 인간 포식자를 일컫는 식인귀는 몸집은 크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선량한 티포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아내'의 말이니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1939년 7월 16일. 오해로 나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이 만일 나를 안다면, 나를 대충 알고 있다면 지금보다 천배는 더 나를 증오할 것이고, 나는 그게 합당하다는 것을 숨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나를 무한히 사랑하게 될 거라는 점도 덧붙여야겠다. 신이 그렇듯이. (p186)

 

1부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을 읽다보면 티포주가 생각보다 비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길한 기록'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그가 얼마간의 예언의 능력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율법이라는 그의 기준 신념이 <마왕>의 전개에 어떤 사인으로 작동할 지도 기대됩니다.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전쟁과 어린이를 결합하는 깊은 친근성은 부인할 수 없다. 요컨대 어린이는 총, 검, 대포, 전차, 무기 같은 장난감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혹시 전쟁이란 어른이 어린이처럼 굴도록, 다시 말해 병기와 납으로 만든 병정을 가지고 노는 나이까지 역행할 수 있도록 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p416)

 

전쟁이 터지고 군에 징집된 티포주는 여러 병과를 거치며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소년병 징집 임무도 맡습니다. 그 과정에 티포주는 전쟁터 곳곳의 식인귀 같은ㅡ그 보다 더 한ㅡ 존재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나치 독일의 잔혹함과 횡포는 더 가혹해지고 자신의 운명을 역시 '불길한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써 내려갑니다. 

 

 

 

내가 칼텐보른의 밀폐된 어항 속에 가두어 놓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 이제 아는 폭군의 절대 권력이 언제나 그를 미치게 만드는 까닭을 알겠다. 폭군은 절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p493)

 

<마왕>은 현대판 식인귀 전설입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상황은 식인귀들이 악행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자신의 생일 하루 전인 4월 19일이면 소년소녀 50만 명을 제물로 요구하는 히틀러를 위해 움직이는 티포주는 자신의 모순된 운명을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왕>에 현혹되어 식인귀가 되어감을 자각합니다. 

 

 

티포주는 그곳에서 에프라임을 구출했다. (p511)

 

이 한 문장이 <마왕>의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티포주는 마침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거쳐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던 유대인 소년 에프라임을 구해냅니다. 

 

"알부케르크는 최악의 해난에 빠지자 한 소년을 어깨에 태웠습니다. 운에 좌우되는 바다 위에서 소년의 순진무구함을 통해 신의 가호를 얻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p525)

 

그리고 티포주는 소년 시절에 읽었던 문장을 떠올립니다.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속죄받고자 한 식인귀의 또다른 면을 드러낸 것입니다. 티포주는 앞서 '전쟁과 어린이'를 결합한 논리로 '죄와 순수'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티포주는 양심을 자각하는 식인귀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마왕>의 유혹에 빠져 티포주 같은 평범한 이들도 악을 저지르듯 정치적 파시즘에 현혹되면 누구든 식인귀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왕> 출간 이후 1972년 미셸 투르니에는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회원으로 선출됩니다. 당연한 일인 듯 보입니다.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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