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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크빈트 부흐홀츠(Quint Buchholz)의 「책그림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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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적 사실주의 기법의 다채로운 점묘화로 유명한 독일의 화가이자 작가 크빈트 부흐홀츠(Quint Buchholz, 1957-)의 그림책 <책그림책 BuchBilderBuch>입니다. 제목 그대로 책을 모티브로 한 그림과 글을 엮은 그림책입니다. 기획 과정이 조금 독특한데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골라 전 세계 46명의 작가들에게 보내 '한 자 적어달라'는 부탁을 했고 모두가 동참한 덕분에 이 책이 탄생했습니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오르한 파묵(Orhan Pamuk),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수전 손택(Susan Sontag),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단상과 크빈트 부흐홀츠의 매력적인 점묘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근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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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작가이자 소설가 보토 슈트라우스(Botho Strauss, 1944)에게 보내진 그림입니다. 책이 가득 실린 거룻배를 타고 있는 세 남자ㅡ혹은 두 남자와 한 여자ㅡ를 그리고 있는데 새의 형상을 한 책의 한 페이지가 바람에 날아가고 있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묵묵히 노를 젓는 남자와 타자기로 타이핑하는 남자, 일어서서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는 여자,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일에 몰두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 기묘한 한 장의 그림에 아주 잘 어울리는 보토 슈트라우스의 기묘한 글이 옆 페이지에 실려있습니다. 

 

 

아침 다섯시에 그는 모자를 쓰고 몇 권의 책과 우산을 집어 들었다. 서른세 시간을 걸어간 후에 그는 텅 비어 있고 전망이 툭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영원히 그곳에 있겠다고 결심했다. _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글입니다. 드넓은 벌판에 책으로 둘러싸여 저 먼 곳을 응시하며 앉은 한 남자는 등이 살짝 굽고 중절모를 쓴 걸 보면 60-70대 정도로 보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그에게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을 피해 집을 떠나 순수하고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마지막 시를 쓴다. 내 앞은 흐릿하고 부드러우며, 내 주위에는 한때 나였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내 등 쪽에서는 또 다른 바다가 자연으로부터 걸어나오며 솟아오른다. _미하엘 크뤼거

 

독일 작가 미하엘 크뤼거(Michel Kruger, 1943)는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며 글을 쓰는 작가를 형상화한 그림을 받았네요. 책상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서서 작가의 모니터ㅡ혹은 타자기에서 올라온 종이ㅡ를 내려다봅니다. 작가들에게 독자 혹은 편집자는 때로 저런 무시무시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미하엘 크뤼거는 저 그림을 더없이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자기 마음이 그려내는대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 1933)에게 보내진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드네요. 책을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의 용맹스럽고 사악한 귀여운 모습이 흩날리는 한겨울 눈발과 너무 잘 어울립니다. 

 

어제 제 크로키북 3장에 한 꺼번에 이빨 자국을 내고 달아나던 사랑스러운 제 고양이의 뒷모습도 비슷했더랬죠.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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