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스탕달(Stendhal, 1783-1842 / 본명: 마리 앙리 벨 Henri Marie Beyle)의 대표작 <파르마 수도원 La Chartreuse de Parme(1839)>입니다.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1830)>을 발표한 지 약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로 스탕달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스탕달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마리 앙리 벨은 일생동안 약 170개의 필명을 사용해 집필활동을 했으며 <파르마 수도원>은 16세기 이탈리아 고서를 골자로 겨우 52일 만에 써낸 작품입니다.
스탕달은 일정한 주소도 직업도 자식도 없었으며 오직 소설 속에서 그의 삶이 영위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로서라도 성공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에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사후에야 거장으로 재평가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행복한 작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르마 수도원>은 1796년 이탈리아 밀라노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프랑스 군대가 입성하여 1799년 패배 후 퇴각할 때까지 밀라노에 주둔하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 파브리스는 이 시기에 태어납니다. 그는 밀라노 공국 대귀족 델 동고 후작의 둘째 아들 파브리스 발세라입니다. 모든 걸 상속받을 장남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둘째 파브리스의 운명은 열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게 행운을 가져올 사람은 분명 여자일 테니까. 넌 남자들의 마음에는 들지 못할 게다. 속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볼 땐, 넌 너무 정열적이거든." (p40)
나폴레옹을 동경하던 파브리스는 1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폴레옹을 따르겠다며 집을 나섭니다. 어머니 후작부인은 파브리스를 말리고 싶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고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며 아들을 미래를 축복해 줍니다. 어머니는 장남보다 둘째 파브리스를 더 애정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파브리스는 미성년자임에도 약간의 운이 따라준 덕분에 나폴레옹이 이끄는 전쟁에도 참전하게 됩니다.
이후 몇 년간 파브리스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파브리스가 감옥에 갇혀 외부와의 연락이 끊어진 채,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조금도 불행을 느끼지 않고 지낸 지 어느덧 석 달이 가까워져 갔다... 클렐리아는 새들이 있는 방의 창가에 서서 파브리스가 있는 창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p349)
잠시 만난 극단 여배우의 애인과 결투 끝에 상대가 죽게 되는데 살인죄로 파르제네 탑 감옥에 갇힙니다. 이때 성체사령관의 딸 클렐리아 콘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낙천적인 성격의 파브리스는 어떤 상황에도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는 타고난 낭만주의자입니다.

이런 모든 명예가 전혀 기쁘지 않고 10명의 하인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커다란 저택에 살면서도 보기에도 더러운 감옥지기들에 둘러싸여 늘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파르네제 탑의 나무 방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불행하다 느끼는 것은 파브리스로서는 하나의 커다란 철학 교훈이었다. (p481)
우여곡절 끝에 파브리스는 감옥을 나오게 되고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부주교가 됩니다. 이제 파브리스는 하인들의 시중을 받고 사교계에서도 환영받고 신자와 신부들의 인망도 높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파브리스는 세속적인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지난 3년 동안의 다시없는 행복을 경험한 뒤, 파브리스의 마음은 애정에서 나온 어떤 변덕을 일으킨다. 이것이 모든 사태를 변화시킨다. (p524)
안타깝게도 클렐리아는 파브리스가 아닌 크레센치 후작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불륜으로 아들이 있었으며 파브리스는 그 아들을 훔치려다 아이를 죽게하고 맙니다. 이제 파브리스의 삶에 어둠의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클렐리아가 충격으로 죽은지 1년 후 파르마 수도원에 은거하고 있던 파브리스도 사망합니다. 그리고 소설 초반부부터 줄곧 파브리스를 애정하던 고모 피에트라네라 공작부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TO THE HAPPY FEW(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p530)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스탕달의 헌사입니다. <파르마 수도원> 속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고단한 생을 살다 간 소설가 스탕달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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