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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고ㅣ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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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1888-1965)의 저서 <침묵의 세계 Die Welt des Schweigens>입니다. 법정 스님께서 생전에 추천하신 책으로 책 표지 표제 바로 밑에 적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추천사 역시 이 책의 가치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직접 읽어주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막스 피카르트는 고뇌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고뇌의 특징은 그것이 무서울 만큼 엄밀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_Rainer Maria R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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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기도 한 침묵 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침묵의 세계를 인지하고 말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없는 상태인 침묵을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아마도 침묵을 둘러싼 구체적인 어떤 것들을 통해 점점 범위를 좁혀가는 방식으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넘깁니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p19)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 태고 때부터 지금까지 영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1장 첫 페이지에서 부터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으로는 비록 인지할 수 없지만 독자적인 세계로 현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네요... 계속 읽습니다. 

 

 

침묵하는 실체가 아직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그 때문에 아직 침묵하는 실체가 가득 차 있는 동양 민족들이 서양 민족들보다 기계와의 생활을 더 잘 견디는 것이다. (p76)

 

이 부분을 읽다가 이 책 최초 출간일을 찾아봅니다. 1948년이네요. 침묵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20세기 후반부터 동서양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음. 그래도 동양의 그것이 서양보다는 풍부할 듯도 합니다. 다시 한번, 침묵의 실체를 모르지만 말이죠.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다. 침묵은 인간의 얼굴 속에 있는 하나의 기관과도 같다. 침묵은 얼굴의 각 부분들의 밑바탕이다. (p112)

 

우리나라에서 얼굴의 옛말이 얼의 꼴, 영혼의 모양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침묵은 영혼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육체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라고 되어있습니다. 침묵의 한 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것이 동물의 완벽함이다. 인간과는 달리 동물에게는 불일치가 전혀 없다. 그 존재와 형상, 내면과 외면이 하나이다. 이러한 융합이 동물의 순진무구함을 형성한다. (p124)

 

인간은 말을 통해서 단순한 현상 이상의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말을 함으로써 겉모습을 극복하고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형상보다는 말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동물은 형상의 침묵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동물의 순진무구함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그들의 침묵을 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복(福)'이었던 침묵이 오늘날에는 위협과 화(禍)로 변해버렸다. (p251)

 

<침묵의 세계> 목차 가운데 「병, 죽음 그리고 침묵」이라는 장에서는 침묵과 질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쫓겨나 갈 곳을 잃은 침묵이 '화(禍: 재앙)'로 변해 어두운 경로로 인간에게 복수하게 되는데 그것이 질병, 바로 암(癌)이라고 설명합니다. 침묵으로 싸인 원인불명의 암은 더이상 '복(福)'이었던 침묵이 아닙니다. 음. 

 

 

현대 세계에는 더 이상 침묵을 위한 자리가 없다. 침묵은 추방당했다. 침묵은 수익성이 없고, 단지 존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듯했고 비생산적이었기 때문이다. (p258)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침묵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해보입니다. <침묵의 세계>의 몇 가지 지점 가운데 침묵과 가까운 이들로 아기, 노인, 농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침묵이 추방당했다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말로 정의하기 좋아하는 인간에게 <침묵의 세계>는 낯설지만 한 번 쯤 그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찾고 싶습니다. 나는 과연 복(福) 으로서의 침묵을 가진 사람인가.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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