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미번역 원고와 산문 같은 소소한 기록을 모은 책입니다. 작품을 통해서 작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특히 저처럼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은 2024년에 편역 출간된 책으로 자서전 같은 내밀한 이야기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낸 헤세의 고독하지만 고유한 발자취를 담고 있습니다.
비루한 삶에 대항하는 최상의 무기는 용기와 고집, 인내다. 용기는 자신을 강하게 해주고 고집은 인생을 재미있게 해 주며 인내는 평안을 허락한다. (p13) _「용기, 고집, 인내」
헤르만 헤세는 그가 사랑하는 미덕으로 '고집'을 이야기합니다. 고집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거룩한 법칙인 자신의 감각에 오직 복종한다며 그런 사람은 돈이나 권력에 가치를 두지 않고 오직 순수하고 자유롭게 자신에게만 주어진 몫을 오롯이 살아내는 것에 집중한다고 부연합니다.
나는 목성의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게자리에서 태어났다. 7월의 따뜻한 날, 초저녁이었다. 그 시간의 기온이란! 살아가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내 이런 기온을 좋아했고 이런 기온을 찾아다녔다! 추운 곳에서는 살 수 없었다. (p41) _「짧게 쓴 자서전」 중에서
자서전의 도입부가 감각에 예민한 헤르만 헤세를 잘 보여줍니다. 온화한 기온이 내려앉는 7월의 초저녁에 태어난 헤세는 이런 기후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이 문장에 제 경우를 슬쩍 대입해 보니 저 역시도 이 세상에 처음 나와 맞이한 기온과 당시의 기후를 좋아하는 사람이네요. 자, 그곳을 찾아 옮겨가야겠습니다.
당신이 보통의 군중이 살아가는 평균적인 삶이 아니라 고유한 삶을 영위하도록 타고났다면 그 길이 힘들지라도 당신은 고유의 개성으로 고유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늦던 빠르던 포기하고 일반 대중의 도덕과 취향, 관습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p108) 「우리 각자의 고유한 삶」
헤세의 말에 의하면 각자의 고유한 삶을 사는 일에는 힘, 그러니까 믿음이 중요합니다. 소신껏 인내하며 사는 삶이라야 비로소 자신만의 인장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죠. 당연히 개성적인 인간은 이 세상에서는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무리 속에 숨어 안온한 보호를 누리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웃사이더로 살아남는다면 세상에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헤세가 그러했고 역사에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이 그러했듯 충실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되세요. 그러면 세상은 풍성하고 아름다워집니다! 그렇지않고 거짓말쟁이와 겁쟁이가 되면, 세상은 가련해지고 개선이 필요한 곳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p145)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소명이나 사명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헤세는 세상은 개선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면 그 소리와 울림, 분위기와 그림자로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할 때 세상이 가련해 보인다는 말이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놀랍도록 쉽고 명확합니다.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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