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심리학 분야의 고전이자 선구적 역할을 한 저서로 이 책의 탄생에는 20세기 중반 시대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출신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 Fromm, 1900-1980)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입니다. 1941년에 출간한 책으로 독일 나치즘의 성립과 지탱 과정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중산계급이 나치즘에 왜?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것에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에 관해 역사와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인간을 속박해온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계속된 투쟁 끝에 마침내 자유를 얻으면 지켜야 할 새로운 특권도 얻게 되고, 그러면 어떤 단계에서는 억압에 맞서 싸우던 계급들이 이번에는 자유의 적을 편들게 되었다. (p19) _「제1장 자유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1장 도입부에서부터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거대한 틀의 한 부분을 꺼내놓고 있습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계급이 어떻게 그 반대편에 서는가에 대한 당연하지만 의문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서 말이죠.
인간ㅡ공동체, 타인, 공공ㅡ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일까요.
파시즘을 낳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라는 문제 외에 인간적인 문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p22) _「제1장 자유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1장 본문에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을 초래하는 인간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는것이죠. 때문에 이 책은 철학서라기보다는 정신분석학이나 사회심리학 부류로 분류됩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수많은 연구와 정보 덕분에 오늘날은 일반인들도 그 이유를 대략 설명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그 토대가 된 것이 이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6장에서는 나치즘의 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우선 나치즘이 성공한 심리적 이유를 분석하면서 당시 독일 국민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눕니다.
별로 강하게 저항도 하지 않고 정권에 굴복한 일부, 그리고 새 이념에 매료되어 열광적으로 추종한 또 다른 일부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주로 노동자 계급과 자유주의적 중산층과 가톨릭 부르주아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이처럼 쉽게 나치 정권에 굴복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주로 그들이 내적으로 피곤하고 체념한 상태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p227) _「제6장 자유와 민주주의」
그 '첫 번째 부류'는 독일 나치즘 등장 초기부터 그들에 적대적이긴 했으나 극렬한 저항도 하지 않고 나치 정권에 반하는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소위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인데 이러한 정치적 체념과 무기력이라는 개인의 특징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자아는 활동적인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p282) _「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에서는 제6장에서 미리 언급한대로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권위주의 체제를 이기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할지 연이어 고찰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활동에서 생겨나는 자질들이 자아에 힘을 주고 그것이 자아의 본래 모습의 토대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없거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열등감이나 무력감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개인이 고독과 무력감을 극복하고 사회 과정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비단 20세기 중반이라는 특정 시대상을 파헤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이 책이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또 읽혀야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2025.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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