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G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Poisson D'or」를 읽고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J.M.G.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1940-)의 1997년 작품 <황금 물고기 Poisson D'or>입니다. 르 클레지오의 사막기행 <하늘빛 사람들>을 읽고 그의 문체에 반해 이 책을 읽게 됐는데 이 책 역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더 좋았습니다. 사막이라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동경이 책 선택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네요.
<황금 물고기>는 어릴 적 납치돼 인신매매로 팔려간 한 소녀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작품으로 주인공 소녀 라일라가 1인칭 화자로 자신의 인생역정을 서술해 나갑니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나를 산 사람은 랄라 아스마이다. (p.9) _첫 문장
햇살이 눈 부시가, 먼지가 날리는 텅 빈 거리, 푸른 하늘, 고통스러운 새의 울음소리... 이것이 유괴 당시 라일라가 기억하는 고향에 관한 전부입니다. 이름도, 부모도, 고향도 모른 채 예스파냐계 유대인 노파 랄라 아스마에게 팔려 식모살이를 합니다. 다행히 랄라 아스마는 좋은 사람으로 라일라는 그녀를 '마님' 혹은 '할머니'라 부르며 푸른 대문을 가진 멜라의 저택에서 하인으로 살아갑니다.
"건강이란 튼튼한 사람들의 머리 위에 놓인 왕관 같은 것이어서, 오직 병든 자들만이 볼 수 있는 거란다." (p.14)
랄라 아스마는 라일라에게 글 읽는 법, 프랑스어, 물건 사는 법, 사람보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만 이제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랄라 아스마는 어느 날 새벽 자던 중 숨을 거두고 라일라는 그를 못살게 구는 랄라 아스마의 아들과 며느리를 피해 멜라의 저택에서 도망치고, 언젠가 잠시 만났던 자밀라 아줌마를 찾아 마을 유곽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내 딸아, 내 딸아." 그 말에 나는 할머니를 잃은 바로 그날에 새로이 어머니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섧게 울었다. (p.33)
유곽의 자밀라 아줌마는 라일라의 보호자가 되어주었고, 그곳의 '공주님들ㅡ라일라가 창녀들을 부르는 표현'과도 잘 지냅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때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와 기억 속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왜 언젠가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는가?" (p.212)
이제부터 라일라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됩니다. 프랑스로,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기까지, 라일라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라일라는 이 세상에 자신을 위한 공간은 단 한 곳도 없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다른 곳으로 떠날 꿈을 꾸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을 잃은, 고향을 알지도 못하는 근원적인 고독감이 라일라를 휘감습니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p.275)
예닐곱 살에 유괴된 라일라의 생애 최초의 기억은 본능적으로 라일라를 어느 장소로 이끌었습니다. 품 즈귀드(Foum Zguid).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라일라는 누가 말해주지 않았으며 자신이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시작이자 끝인 지점에 돌아왔음을 알았습니다. 길고 고된 여행 끝에...
J.M.G. 르 크레지오의 글에서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사막이 연상됩니다. 모로코인 아내와 산과 바다, 대지를 다니며 쓰는 그의 글에 자연 고스란히 배어들어 있습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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