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1235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지만 '은하수 안내서'라는 표제를 보면 1235페이지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할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버금가는 부담서적 중 하나였는데 숙제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괜한 부담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영국의 각본가이자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 1952-2001)의 코믹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입니다. 1979년 출간 후 2005년 영화로도 개봉된 이 작품은 원래 1978년 3월 BBC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해 소설, TV, 영화 등 여러 매체로 확장되었습니다. 왜냐?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서문의 「안내문」에서 더글러스 애덤스가 이 행성을 떠나는 법 5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시도해보고 싶네요.
제가 읽은 합본에는 이 작품의 여섯 개 시리즈, 1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3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4부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5부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 6부 《대체로 무해함》이 모두 수록돼 있습니다.
소설은 간단히 말해 영국인 아서 덴트가 오랜 외계인 친구 포드 프리펙트와 함께 은하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포드 프리펙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이동 조사원으로 지구에 온 베텔게우스 행성 출신 외계인인데 그동안 아서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여왔습니다. 포드는 지구가 파괴되기 2분 전 친구 아서 덴트를 구출해 함께 우주선에 히치하이킹합니다.
그리고 1235페이지에 달하는 이들의 은하수 여행이 펼쳐집니다. 당연히 지구는 사라진 후입니다.
"이게 뭐야?" 아서가 물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야. 일종의 전자책이지.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이 전부 들어 있어. 그게 바로 이 책의 사명이야." "표지가 멋있네. '겁먹지 마세요'라, 오늘 내내 들은 말 중에서 처음으로 도움이 되고 이해할 만한 소리군." (p.71_1부)
우주선에 올라타 이동하는 동안 포드는 아서에게 이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건넵니다. 책 표지에 쓰인 친절한 문장ㅡ'겁먹지 마세요'ㅡ이 조금 전 자신의 고향인 지구를 잃고 얼렁뚱땅 우주선에 탑승한 아서를 격려합니다. 광활한 우주의 관점에서는 사실 전혀 겁먹을 일이 아니긴 합니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 "해답은....!!! 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p.197_1부)
은하계 최고 수준의 지적 존재들이 만든 초거대 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750만 년 동안 복잡한 계산 끝에 내놓은 삶, 우주,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답은 42입니다. 읭? 과연 구체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지, 그래서 더 큰 질문을 알기 위해 '지구'라는 또 다른 컴퓨터를 설계하게 됩니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42라는 숫자에 숨겨진 뜻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고 작은 숫자를 내놓음으로써 생의 허무 인생의 무의미, 우주의 진리는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풍자적 메시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뭔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우주는 불안할 정도로 큰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이 사실을 무시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안해 낸 좀 더 작은 장소로 기꺼이 이주하려 할 것이고, 실제로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 (p.306_2부)
불안할 정도로 큰 우주, 아서와 포드는 우주의 통치자를 찾아갑니다. 고립된 행성에 홀로 지내며 고양이와 살고 있는 우주의 통치자는 자신의 고양이를 주님으로 여긴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합니다.
"내 고양이죠." 우주의 통치자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고양이를 안아 올려 쓰다듬었다. "난 이 녀석을 주님이라 부르죠. 난 이 녀석에게 정말 잘해준답니다." (p.441_2부)
통치자가 자신이 통치해야 할 세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를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ㅡ같은 고양이 집사로서ㅡ왜 느닷없이 고양이인가, 정말 고양이는 외계인의 스파이인가, 같은 뚱딴지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타임스는 이 책을 두고 "전 우주적 규모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라고 평했습니다. 심심할 때, 시간이 많을 때,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읽어보기 좋은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굳!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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