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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 Cat's Cradle」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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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 Cat's Cradle」을 읽고


독일계 미국인 작가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Jr, 1922-2007)이 1963년 발표한 장편소설 <고양이 요람 Cat's Cradle>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3년 자진 입대한 커트 보니것은 독일군의 포로로 잡혀있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죽을 뻔했고 이때의 경험을 모티브로 그의 대표작 <제5도살장(1969)>을 집필합니다. 이 책 <고양이 요람>은 그보다 6년 앞서 출간된 소설로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아이스-나인(Ice-Nine)'이라는 물질을 놀이하듯 만들어내는 과학의 비윤리성과 배금주의, 그로 인한 인류의 절망적인 미래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풍자한 작품입니다.

 

커트 보니것은 자신의 작품 가운데 앞서 언급한 <제5도살장>과 이 책 <고양이 요람>을 최고로 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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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로 사용된 고양이 요람(Cat's Cradle)은 실뜨기 놀이를 가리키는 말로 손가락 사이에 실을 걸어 다양한 모양을 만들지만 실제로는 어떤 형태도 분명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실만 남는다는, 삶의 본질적 무의미와 허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입니다. 

 

나를 조나라고 부르라... 내가 남들에게 불운을 가져다주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어김없이 나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다. (p.15)

 

<고양이 요람>은 구성이 매우 독특한데 127개로 나뉜 짧은 글들이 묘하게 유기적으로 얽혀있습니다. 1편 소제목은 「세상이 끝난 날」, 마지막 127편은 「끝」을 소제목으로 쓰고 있습니다. <고양이 요람>의 첫 문장에서는 성경의 요나 선지자를 비유로 들고있습니다. 구약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멸망을 예언하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배를 타고 달아나다 광풍을 만나 고래에게 잡아먹히는 고초를 겪은 후 결국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 이 예언을 따라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회개를 한다는, 해피엔딩이긴 합니다. 

 

왜 이 책의 화자는 자신을 '조나(요나, 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책을 다 읽고나면 이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커트 보니것은 <고양이 요람>에서 '보코논교'라는 종교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화자는 보코논교 신자입니다. 보코논서 첫 문장은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려는 진실은 모두 파렴치한 거짓말이다.(p.20)"로 화자는 유익한 종교는 모두 거짓말에 기초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책 <고양이 요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사전에 경고합니다. 그리고 조나는 당연히 보코논교 신자입니다. 

 

 

그날은 양탄자 위 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시더니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제 얼굴에 대고 그 얽힌 끈을 흔드셨죠. "보여? 보여?"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고양이 요람이야. 귀여운 야옹이가 자고 있는 게 보여?" 아버지 얼굴의 땀구멍이 달 표면의 분화구만큼이나 커 보였습니다. 귀와 콧구멍은 털로 그득했죠. 시가 연기에 찌든 아버지에게서 지옥의 아가리 같은 냄새가 났어요.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 아버지는 제가 본 가장 추한 생물이었습니다. (p.27)

 

<고양이 요람>에서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며 노벨상까지 수상한 필릭스 호니커 박사와 그의 세 자녀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세 자녀 중 막내 뉴턴 호니커가 화자에게 편지로 전한 이야기 속에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고양이 요람>의 거의 모든 주제가 담겨있네요. 그런데 이토록 진지한 어투로 아버지를 저지경으로 묘사하다니, 이 부분 너무 재미있지않나요.

 

 

아이스-나인은 필릭스 호니커 박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인류를 위해 창조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p.71)

 

'마지막 선물', 이 선물이 과연 인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세 자녀의 경제적인 부를 위한 것인지 선물이긴 한지, 여러 수 앞에서 세상을 풍자하는 조나의 위트를 놓치면 안 됩니다. 

 

조나는 <고양이 요람>을 통해 성경의 요나선지자가 그랬듯 인류에게,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회개하라! 끝이 가까이 와있다!!' 라고 말이죠.

 

커트 보니것의 팬으로서 이 책 역시 참 좋습니다. 


2025.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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