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Fingersmith」를 읽고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Sarah Waters, 1966-)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가장 성공적인 작품, 2002년 소설 <핑거스미스 Fingersmith>입니다.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의 원작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로 등장인물들 간의 음모와 사랑, 속임수와 배신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은 런던 빈민가에서 고아로 자란 소매치기 수 트린더(Sue Trinder)와 막대한 유산을 받을 부유한 상속녀 모드 릴리(Maud Lilly)라는 두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 시절, 내 이름은 수전 트린더였다. 나는 태어난 해는 알지만 태어난 날짜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기에 크리스마스를 생일로 삼았다. 나는 내가 고아라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죽었다. (p.11) _첫 문장
<핑거스미스>는 주인공 수 트린더가 일인칭 화자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첫 문장부터 모든 것이 모호한, 앞으로 전개될 작품 전체의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불투명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수 트린더의 본명은? 태어난 해는? 고아인가? 어머니는 죽었나? 답은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빈민가에서 고아로 자라 소매치기를 일삼던 수는 큰돈을 손에 넣으려는 젠틀먼(리처드 리버스)의 말에 속아 모드 릴리의 하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젠틀먼을 도와 모드를 속이고 여러 계략을 꾸미지만 둘 사이에는 예상치 못한 정서적 유대가 형성됩니다.
처음에는 모드와 내가 함께 자는 게 보통이었다. 모드는 그 뒤 악몽을 꾸지 않았다. 우리는 자매처럼 함께 잤다. 정말로 자매 같았다. 나는 언제나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젠틀먼이 돌아왔다. (p.134)
모드와 수, 둘 사이에는 신분의 격차로도 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젠틀먼이 있습니다. 두둥.
우리는 비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비밀이었고 비열한 비밀이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밀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던 사람은 누구이며,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은 누구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누구이며, 사기꾼은 누구인지 정리해 보려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p.165)
시간이 지날수록 수는 모든 것이 얽혀있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속임을 당하는 사람이 모드 인지 수 자신인지 조차 이젠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표제로 사용된 <핑거스미스>는 '도둑'을 뜻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로 소매치기로 살아온 주인공 수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핑거스미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마치 우리 인생과도 같습니다.
처음에, 나는 내가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이다. (p.263)
여러 차례의 반전을 거듭하며 8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로 전개되는 <핑거스미스>, 재미있습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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