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 & 에두아르 부바의 「뒷모습 Vues de dos」을 읽고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꾸미거나 감출 수 없는, 심지어는 존재의 이면을 드러내는 <뒷모습>을 탐구한 사진 에세이집을 발견했습니다.
현대 프랑스 최고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가 글을 쓰고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 1923-1999)가 사진 작업을 한 <뒷모습 Vues de dos>입니다. 두 거장이 만들어 낸 <뒷모습>에 관한 단상은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_「뒤쪽이 진실이다!」 가운데
우리는 얼굴 표정을 짓고 손짓과 발짓,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정면, 앞모습에 이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그.래.서. 우리의 등이 몸의 뒤쪽이 진실하다고 말합니다.
등이 구부정해진 노인은 정원 가꾸는 일만 생각하며 느릿느릿 나막신 신고 걸어간다. 그의 옆에 이어지는 저 이끼 낀 난간은 더욱 은성했던 시절을 말해준다. _「채소밭 예찬」 가운데
정원사의 <뒷모습> 사진에서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습니다. 전쟁 중에도 정원을 가꾸고 정원일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아마추어 정원사 헤르만 헤세, 만년의 그는 저 사진 속 정원사의 뒷모습과 닮지 않았을까요. 헤세 역시 정원을 '예찬'하는 삶을 살았으니 「채소밭 예찬」이라는 짧은 글의 제목이 더없이 마침맞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세수하고 나를 위해 옷을 차려입는다. 나는 너를 위해 머리를 매만진다. / 반대로 수도자, 병사, 수인의 배코머리는 비인간적 규율의 질서를 위해 타자와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드러낸다. _「머리털」 가운데
머리카락에 대한 통찰을 적은 「머리털」이라는 단상이 꽤 신선합니다.
앞모습에서 머리카락은 '한낱 사진틀' 처럼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존재이유지만 뒷모습에서 머리카락은 '사회적 관계' 측면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배코머리(빡빡 깎은 머리)는 그런 면에서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는 것인데 음... 과연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뒷모습>에 수록된 다양한 '뒷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칩니다. 우리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하고자 하는 말이 훨씬 더 많은 게 분명합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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