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의 「코끼리의 여행 A viagem do elefante」을 읽고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1922-2010)의 2008년 작품 <코끼리의 여행 A viagem do elefante>입니다.
이 소설은 1551년 포르투갈 국왕이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코끼리를 선물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습니다. 제대로 된 운송수단도 없던 16세기 중반에 포르투갈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코끼리를 어떻게 수송했을까부터 의문인데...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코끼리의 '여행기'가 펼쳐질 듯합니다.
국사(國事)에서 부부의 침대, 그 침대가 교회나 국가의 승인을 받은 것이건 아니면 누구의 승인도 받지 못한 것이건, 어쨌든 부부의 침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가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즉 오스트리아까지 이어지는 코끼리의 특이한 여행의 첫 단계는 포르투갈 왕궁의 왕의 숙소에서, 대체로 잠자리에 들 시간에 이루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p.9) _첫 문장
주제 사라마구의 특징적인 문체가 첫 문장에서부터 사용됩니다. 마침표와 쉼표 외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단락 구분도 없고 인용부호도 없는, 그래서 오히려 끊김 없이 술술 읽히지만 종종 되돌아가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그런 문장 말이죠.
내용인 즉, <코끼리의 여행>은 포르투갈 국왕 부부의 침실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시작됩니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세 번 끄덕이더니 멈추었다가 다시 세 번 끄덕인 뒤에 말했다. 그래, 그거 재미있는 생각이로군,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지요, 아주 좋은 생각, 탁월한 생각이죠, 왕비가 받아쳤다. (p.12)
포르투갈의 왕, 동 주앙 3세와 왕비 카타리나는 사촌인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보낼 '그럴싸한' 결혼 선물을 고민하던 중 2년 전 인도에서 선물 받은 거대한 코끼리 '솔로몬'을 떠올립니다. 사실 솔로몬은 진귀한 동물이지만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사료만 축내고 있었기에 포르투갈 왕 부부에게 이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못해 탁월할 정도입니다.
많은 갈채를 받을 거고, 사람들이 거리에 몰려나오겠지요, 그러다 사람들은 잊어버릴 겁니다, 그게 인생의 법칙이죠, 승리와 망각. (p.78)
코끼리 솔로몬은 긴 여정에 오릅니다. 인도에서 포르투갈, 다시 포르투갈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코끼리는 '걸어서' 이동합니다. <코끼리의 여행>은 코끼리의 세상 구경, 사람들의 코끼리 구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와 수행단은 여러 나라와 마을을 거치며 유럽 전역에서 화제가 됩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거대한 코끼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체라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코끼리를 바라봅니다.
알프스산맥이다. 그래, 맞다. 하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눈이 부드럽게 내리고 있다. 솜 조각 같다. 하지만, 우리 코끼리가 말해 주겠지만, 부드럽다는 데 속으면 안 된다. 그의 등에 지고 가는 얼음이 갈수록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p.237)
여행 중 코끼리와 수행단은 다양한 문화적 장벽과 어려움을 겪고 낯선 기후와 음식,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혼란으로 여정 내내 도전에 맞닥뜨립니다. 주제 사라마구는 <코끼리의 여행>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편견, 여행을 통한 성장, 삶의 덧없음 같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코끼리 솔로몬은 왜 하필 이름이 '솔로몬'이었을까요.
지혜로운 왕, 공정한 재판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 소설 속 '솔로몬'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진 듯합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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