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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필리프 클로델의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L'Archipel du chien」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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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클로델의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L'Archipel du chien」을 읽고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필리프 클로델(Philippe Claudel, 1962-)의 2018년 작품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L'Archipel du chien>입니다. 책 표지 이미지가 독특하다고 여겼는데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 그림을 보니 섬뜩합니다. 개의 형상을 한 구덩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여섯 사람. 

 

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지중해의 작은 화산섬의 해변에서 세 흑인 청년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섬사람들은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이유는 신원도 사인도 불명확한 '난민'들의 시신으로 인해 현재 섬에서 진행 중인 온천 사업에 차질을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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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정체불명의 화자에 의해 서술됩니다. 그는 자신을 그저 '목소리'라고 소개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의 목격자이다.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는 자이다. 나는 성가시게 하는 자이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나는 모든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목소리이다. (p.10)

 

이 책은 2015년 이후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유럽의 난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입니다. 모두가 눈을 감으려 하는 현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양심'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져야 합니다. 비록 우리 삶을 짓누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의 삶이 이로 인해 타격을 받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섬의 묘지에 사람을 매장하는 일과 구렁에 묻는 일에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건 전혀 능욕적인 일이 아닙니다." (p.54)

 

섬사람들은 파도에 떠밀려온 세 구의 흑인 시신을 묘지가 아닌 화산 구덩이에 매장하기로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망자들을 능욕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이 사건이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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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허겁지겁 구덩이 가장자리에 나란히 바짝 엎드려 숨죽이고 암흑 속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p.64)

 

'허겁지겁'이라는 표현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는 양심을 봅니다. 전혀 능욕적인 것이 아니라고 자신들의 행동을 포장하려 했지만 그들을 두렵게 하는 양심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독자는 깨닫는다... 그렇게 이곳은 끔찍한 도시가 된다. 아무도 살 수 없는 도시이다. (p.217)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에서는 등장인물들을 이름 없이 시장, 교사, 의사, 신부, 경찰, 노파 등으로 부릅니다. 필리프 클로델은 공권력과 지식인을 상징하는 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의적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양심이라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 덕분에 잠시 깨닫겠지만 결국 '독자'는 다시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어리석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들을 할 것이라는 걸,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을 통해 양심은 말하고 있습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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