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디 미카코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읽고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 작가 브래디 미카코(Brady Mikako, 1965-)의 소셜 에세이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입니다. <The Real British Secondary School Days>라는 직관적인 영문 표제를 쓰고 있는 이 책의 부제는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로 저자의 중학생 아들의 영국 공립학교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아일랜드계 백인과 일본인 혼혈인 브래디 미카코의 아들이 겪는 영국 학교 생활을 통해 다문화와 다인종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외국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서며 아시아 최초로 다인종 국가로 진입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듯합니다.
영국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다가오면 수준이나 여건이 좋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합니다. 학교에서 집이 가까운 순서로 배정을 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좋은 학군에 속한 주택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고 여기서부터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다시 소득격차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상위 학교 인근의 집값이 치솟고, 부자와 빈자의 거주지는 점점 분리되고 있다. 이것이 최근 '소셜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리며 대두되는 사회문제다. (p.14)
우리나라에서도 낯선 상황은 아니지만 막상 '소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를 보니 충격적이네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p.29)
미카코의 아들은 백인 노동자 계급ㅡ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는 차별적인 용어로 일컬어지는(p.16)ㅡ 의 아이들이 가는 집 근처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다양성이라고는 없는, 백인들만 가득한 이 학교는 인종차별이 심하고 학교 분위기도 좋지 않아 미카코의 배우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의 노트에 적힌 의미심장한 낙서는 영국에서 '이방인'인 미카코의 마음을 내려앉게 합니다.
아들은 집에오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엄마 미카코에게 이야기합니다. 주로 인종차별이나 다문화, 다인종에 관한 이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어수선하던 시기에 아들은 학교에서 배운 '엠퍼시의 시대'에 대해 미카코와 대화를 나눕니다.
"브렉시트나 테러 문제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랑 다른 입장의 사람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는 게 중요하대. 그러니까 남의 구두를 신어보는 거야. 선생님이 앞으로는 '엠퍼시의 시대'라고 화이트보드에 커다랗게 적었는데..." (p.86)
미카코는 사전에서 '엠퍼시'와 '심퍼시'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데, "심퍼시가 감정적 상태라면, 엠퍼시는 지적 작업"(p.87)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발견하고는 온갖 분열과 대립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영국의 학교에서 열한 살 아이들에게 엠퍼시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에 대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합니다.
1권과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모든 내용이 읽어볼 만합니다. 특히 다문화와 다인종에 대해 이제는 우리가 약자나 소수가 아니라 소위 기득권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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