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을 읽고
최저임금으로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가난이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한 기자가 잠입 취재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1941-2022)의 2001년 저서 <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1998년에서 2000년까지 3년여간 잠복 기자로 직접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요양원 보조 등으로 일하면서 직접 체험한 워킹 푸어 계층의 실상을 담고 있습니다.
출간 이후 미국 600여 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가디언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서 13위, 2024년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57위에 올랐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 서문에서 자신의 '기만'적인 시도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조금 '특별'하다는 기만에 대한 과장된 인식에 대해서도 고백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워킹 푸어 계층들이 종사하는 소위 하류 직업에 대한 저자의, 우리의 왜곡된 시선 때문일 것입니다.
각각의 실험 장소에서 떠날 때가 되면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동료 몇 명에게 내 정체를 '커밍아웃'했다. 결과는 늘 깜짝 놀랄만큼 실망스러웠다.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한 반응은 "그렇다면 다음 주 저녁 근무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에요?"였다. (p.20)
오만함을 모르는 이들에게 사회적 계층같은 것은 그리 특별한 개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것이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만 중요한 것이죠. 바버라의 실망스러움은 어쩌면 우리 내면 무의식에 자리한 오만함, 나는 사실 당신들과 같지 않다는 마음을 들킨 것에 대한 무안함이겠지요.
<노동의 배신>은 저널리스트가 쓴 시사적 기사이지만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힙니다.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글임에도 바버라의 위트 있는 문체가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합니다. 청소부 일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다룬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의 한 부분입니다.
첫 번째 집을 간단하게 해치우고 '점심'을 급히 먹었다. 로잘리의 점심은 도리토스 과자, 매디의 점심은 쿠키 한 봉지였다. 그다음 집은 외곽에 있는 화장실만 다섯 개인 대저택인 데다 청소 용역 회사를 처음 이용하는 고객의 집이라고 겁을 주었다. 집이 얼마나 크던지, 우리는 양동이를 손에 든 채로 잠시 말을 잊었다. 이윽고 우리에게 합당한 겸허한 출입문을 찾아 나섰다. 집은 마치 파도에 밀려 모래사장에 잘못 올라앉은 거대한 원양 여객선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p.116)
'커 자빠진 집'이라는 표현ㅡ물론 번역이지만ㅡ에서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집니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 후에 도리토스 한 봉지로 점심을 때우고 다음 작업에 나서는 청소 용역부의 모습을 통해 바버라는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극단적인 불평등을 향해 치닫는 일종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p.285)
<노동의 배신>에서는 경영자들이 행하는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억압적 경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억압적 경영의 기저에는 '그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깔려 있으며 이는 실제 경험보다는 사회적 계급이나 인종에 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억압의 형태로는 사적인 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약물 검사와 인성 검사를 예로듭니다. 바버라 역시 이러한 처우를 받았으며 이러한 검사에 드는 비용으로 인해 임금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버라는 <노동의 배신> 「4장. 왜 악순환이 계속되는가」에서 기자다운 날카로움과 진지함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워킹 푸어가 처한 현실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빈곤을 '비상사태'로 규정합니다.
가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빈곤을 일반적으로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으니' 말이다. 점심을 과자나 핫도그로 때웠다가 근무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현기증이 나 기절할 지경이 되는 것을, 차가 '집'이 되기도 하는 상황을,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도 '참고 일해야'하는 상황을, 병가 수당도 의료보험도 없으니 오늘 하루 일을 못하면 당장 내일 식료품을 살 돈조차 없는 절박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p.288)
바버라는 초판 출간 10여 년이 지난 후 재판본에서 「잠입 취재 그 후 10년, 상황은 더 나빠졌다」라는 에필로그를 남기고 있습니다. 노동의 배신을 바로 잡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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