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마틴 에덴 Martin Eden」 1, 2권을 읽고
미국 작가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의 1909년 소설 <마틴 에덴 Martin Eden>입니다. 이 작품은 1908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1년 동안 잡지에 연재되었으며 1909년 단행본 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마틴 에덴>은 사랑하는 여인이 속한 부르주아 계층으로 들어가고자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프롤레타리아 청년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로 잭 런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9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2020년 국내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
"루스, 이 분이 에덴 씨야." '에덴 씨'라는 말은 그를 전율하게 했다. '에덴'이라거나, '마틴 에덴'이라거나, 그냥 '마틴'이라고 평생 불리던 그가, '씨'라니! (p.19) _제1권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마틴 에덴은 우연히 상류계급 여성 루스를 만나면서 그녀의 음성, 태도, 귀품있는 분위기에 온전히 매료됩니다. 기관실과 선원실, 감옥과 선술집, 구호소와 슬럼가를 전전하며 살아온 그에게 루스의 존재는 천국(Eden)과도 같은 이상이었습니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정화되고 고상해지는 기분입니다.
그가 사는 저 아래 세상은 비루했다. 그는 자신의 나날을 더럽히는 그 비루함을 떨쳐내고 상류층이 사는 승화된 영토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는 글을 쓸 것이다. 그 길이 루스에게 다가가는 길이다. (p.99, p.112) _제1권
마틴 에덴은 루스에게 영어를 배우고 발음을 교정받고 산수에도 입문합니다. 그리고 그는 루스가 사는 부르주아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계층 상승에 대한 강한 욕구는 그야말로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안타깝게도 루스는 마틴 에덴이 작가로 성공하기 직전, 편지로 이별을 통보합니다. 기다리지 못한 것이죠.
편지에는 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쓴, 그러나 더없이 속물적인 루스의 본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아직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미 '작가'인 마틴의 눈에도 그 진실이 보였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마틴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돈과 명예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제 그는 알았다. 자기가 정말로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가 사랑한 사람은 이상화된 루스, 자기 자신이 창조한 천상의 존재, 자기가 쓴 연애 시의 환하게 빛나는 정신이었다. 부르주아인 실제의 루스, 부르주아들의 모든 결점과 가망 없이 왜곡된 부르주아 심리를 가진 그녀를, 그는 사랑한 적이 없었다. (p.231) _제2권
그는 새로운 천국을 찾지 못했고, 이제는 예전의 천국도 찾을 수 없었다. (p.247) _제2권
마틴 에덴은 프롤레타리아로 살며 누리던 소소한 천국을 잃었으며, 새로운 천국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그러니까 이미 갖고 있던 에덴(Eden)을 그는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생에 귀중한 깨달음은 대체로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를 성취한 이후에 얻게 됩니다.
<마틴 에덴>을 읽으며 배우고 글을 쓰는 일, 작가라는 일은 진실을 발견하기에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그 진실이 비록 우리가 기대하던 밝고 희망찬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죠.
2024.12.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 Chess Story」를 읽고 (1) | 2024.12.20 |
---|---|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 The Tartar Steppe」을 읽고 (3) | 2024.12.19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순수와 비순수」를 읽고 (0) | 2024.12.18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를 읽고 (2) | 2024.12.17 |
알베르 카뮈의 「전락 The Fall」을 읽고 (6) | 2024.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