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전락 The Fall」을 읽고
1956년 출간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마지막 소설 <전락 La Chute; The Fall>입니다. 사실 그 이후에 쓴 소설 <최초의 인간>이 있지만 집필 중 사망하여 미완성 유작으로 남게 되면서 <전락>이 그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이 됩니다. 카뮈는 <전락>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전락>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파리의 유명 변호사로 활약하던 장바띠스뜨 끌라망스입니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언뜻 분위기로만 봐서는 고백이나 참회인 듯도 하고 설교처럼도 보입니다. 끌라망스 변호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전락>에 등장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p.7) _첫 문장
<전락>은 암스테르담의 어느 술집에서 시작됩니다. 끌라망스는 네덜란드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이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겁니다. 그때부터 끌라망스는 그 상대에게 어쩌면 계산된 고백을 끝없이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생에 있어 <전락>경험에 대한 고백은 당시 20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언제나 허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나, 나, 나, 이것은 내 소중한 삶의 후렴구처럼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p.50)
파리에서 아주 잘 나가는 변호사로 적당한 허영과 우월감으로 자신의 삶에 온전히 만족하며 살던 끌라망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철저한 <전락>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그의 내면에서 '양심'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궤도 위에 올라 있었고 그대로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선 더 많은 찬사가 쏟아졌지요.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바로 나에게 화가 닥친 겁니다! 내 일상에 느닷없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이닥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p.87)
어쨌든, 나 자신에 대한 오랜 탐구 끝에 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이중성을 밝혀냈습니다. 내 겸손은 남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되었고, 겸허는 남을 이기는 데, 미덕은 남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걸 말입니다. (p.83)
인간의 이중성과 그 내면에 숨은 우월의식, 타인의 비극에 굶주린 오직 자기 삶에만 애착하는 부조리함을 끌라망스는 줄줄이 읊어댑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며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의 모습이라는 것을 먼저 참회한 자로서 친절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스스로 판사의 자리에 앉아 인간들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며 그들을 심판합니다.
중요한 것은 끌라망스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수위가 죽었다고 칩시다. 이웃들은 즉시 깨어나 안절부절못하며 영문을 알아보고 동정들을 쏟아낼 겁니다. 죽음은 기사화되고 마침내 구경이 시작되는 거지요. 이들은 비극에 굶주려 있고, 이것이 바로 이들의 알량한 우월감이요, 아뻬리띠프ㅡ식전주ㅡ인 것을. (p.36)
<전락>에서 장바띠스뜨 끌라망스는 몇몇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종교적인 표현도 다수 사용합니다. 마치 세상을 향해 지금 그 길은 아니라고, 어서 바른 길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종교인의 모습이 비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잘 나가던 끌라망스가 전락의 순간을 맞이했듯, 인간은 누구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락과 만나게 됩니다. 카뮈는 그때 자신의 소설 <전락>을 읽어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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