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고
200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출신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 1946-)의 1983년 작품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입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페미니스트 성향의 작가로 자전적 성격의 이 소설 역시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1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동명의 영화 《피아니스트》로 각색해 칸 영화제에서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치는 여자>의 도입부에서는 경쾌하고 위트있는 문체로 정신적인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는 주인공 에리카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십 대 후반인 에리카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집안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에리카를 여전히 아이처럼 대하며 소위 구속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피아노 선생으로 일하는 에리카 코후트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파트 안으로 회오리바람처럼 달려들어온다. (p.7) _첫 문장
사춘기 때 에리카는 영구 수렵금지구역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받고 유혹에 노출되지 않는다. 금지는 일하는 데는 상관없고 노는 데만 해당된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무기를 들고서 보초를 선다. 밖에서 노리고 있는 남자라는 사냥꾼으로부터 에리카를 보호하고.. (p.48)
에리카의 여성성을 억압한 것은 의도가 있건 아니건 그의 어머니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두르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며 에리카를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워냅니다. 다 자란 에리카는 이제 그런 어머니를 증오합니다.
문장 가운데 '(어머니의) 금지는 일하는 데는 상관없고 노는 데만 해당된다'라는 표현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 에리카 어머니의 뒤틀린 욕망이 결국 딸에게까지 이어진게 아닐까요. 물론 다른 형태의 욕망으로 말이죠.
이 병적으로 왜곡되고, 이상에만 매달려 있고, 우상화되고, 잘못 떠받들어진 정신에만 의지해 사는 괴상한 지성인 에리카를 클레머는 이쪽 세상으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기다려라! 사랑의 기쁨을 그녀는 곧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p.93)
오직 <피아노 치는 여자>로 살아온 에리카 앞에 아름다운 제자인 공대생 클레머가 나타납니다.
억압되고 왜곡된 에리카의 여성성이 클레머와의 만남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제자와의 비틀린 애정, 결코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에리카의 삶에 있어서 그것은 지극히 그녀 다운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국가와 가정에서 만장일치로 공인된 이 어머니라는 지위는 종교재판장의 심문권과 총살집행자의 명령권을 동시에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p.8)
<피아노 치는 여자>의 주인공 에리카가 자신을 결속하는 어머니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 그녀가 모녀관계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무력감을 잘 보여줍니다. 위트있는 듯 보이는 비유 속에 담긴 강렬한 증오의 감정까지 말이죠.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이제는 자기를 좀 내버려두라고 악을 써보기도 하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는 딸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에리카보다 세상을 오래 살았으며 에리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에리카를 키워준 부모이기 때문이죠... 에리카와 어머니가 건강하게 이별할 길이 과연 있을까요.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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