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트뤽의 「라플란드의 밤 Forty Days without Shadow」을 읽고
문명이 저지른 소수민족에 대한 압제와 무자비한 탄압을 다룬 작품입니다.
프랑스 닥스 출신 기자이자 작가 올리비에 트뤽(Olivier Truc, 1964)의 데뷔 소설 <라플란드의 밤 Le Dernier Lapon, Forty Days without Shadow>입니다. 라플란드(Lappland)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까지 이어진 최북단 야생 지역을 말합니다. <라플란드의 밤>에서는 북유럽 최후의 원주민인 사미족이 거주 곳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백미는 사미족에 관한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의 배경은 1693년으로 17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하던 시기에 한 사미족 샤먼 아슬락이 '목사'라 불리는 무리의 추격 끝에 공개 화형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슬락은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 사미족의 노래, 요이크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한 사미족 소년이 숨어서 모두 지켜봅니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리고 자기 아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습니다.
이날은 일 년 중 가장 놀라운 날이다. 인류의 모든 희망을 품은 날이기도 하다. 내일이면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p.29)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날짜는 1월 10일, 극지방 라플란드에 40일간의 극야가 끝나고 태양이 돌아오는 날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노르웨이 카우토카이노에 위치한 사미족 박물관에서 북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300여 년 전 사미족 샤먼 아슬락이 살해된 1693년의 그날도 '태양이 돌아오는 날'이었다는 것인데 대체 이 두 사건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라플란드의 밤>은 이 두 사건을 주축으로 한 수사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국가의 끄트머리에 처박힌 채, 모두에게 잊힌 이 마을을 방문하면 알코올중독자가 되거나 종교에 헌신하는 길 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걸 곧 깨닫게 된다. 검은색과 흰색 외에는 다른 색조를 허락하지 않는 이곳에 회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p.490)
설교자인 라르스 레비는 몇 년간 이 마을에 살면서 죄악과 술에 대항하는 동시에 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사미족 영혼도 다루어나갑니다. 라플란드에는 그 어떤 '회색'도 존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소설 속에는 보물처럼 사미족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숨어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미족의 언어에는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는 것, 사미족은 북극광을 죽은 자의 눈으로 여겨 손가락으로 오로라를 가리키면 안 된다는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수십 년 간 스칸디나비아의 목사들이 사미족 샤먼의 북을 빼앗고 불태워 전 세계에 겨우 50여 개만 남았으며 그것 역시 사미족이 갖고 있는게 아니라 각국 박물관이나 개인 수집가가 갖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라플란드의 밤>을 읽고 사미족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는 독자가 적지 않을 듯합니다.
<라플란드의 밤>은 역사, 문화, 지리를 광범위하게 넘나드는 스릴러 소설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고나면 앞서 말한 두 사건의 연관성과 문명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소수민족인 사미족의 존엄을 알게 됩니다.
오래전 TV다큐멘터리에서 노르웨이 사미족 청년의 휴가를 다룬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막연히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에 비해 '아름답다'라고만 여겼습니다. 저자 올리비에 트뤽이 사미족에 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그래서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덕분에 잊힐 뻔한 귀한 소수민족의 역사를 배웠으니까요.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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