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도시의 마지막 여름」을 읽고
이탈리아 작가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Gianfranco Calligarich, 1939-)의 '사연 많은'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 L'Ultima Estate in Citta>입니다. 이 작품은 1973년 첫 출간 후 50년이 흘렀습니다.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가 처음 이 소설을 출간하려 했을 때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던 중 유명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 빛을 봅니다. 발표 직후 이네디토상을 수상하고 몇 달 만에 17,000부가 팔리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돌연 절판되고,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몇 차례 겪은 후 2021년 영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다시 문학상을 휩쓸며 전 세계로 알려집니다.
잊힐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은 <도시의 마지막 여름>은 아웃사이더, 혹은 군중 속의 고독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독자들도 이러한 감정에 더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항상 이런 식이다.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끝장으로 치닫게 만드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_첫 문장(p.15)
<도시의 마지막 여름>은 첫 페이지부터 아웃사이더적인 명문장들을 마구 쏟아냅니다. 주인공 레오는 세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치열한 경주에서 자발적으로 제외된 인물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하고 돈 벌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이 레오의 눈엔 '혐오(p.17)'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의 방관자가 되는 것이 지혜임을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일찍.
레오는 매일 책 한 권을 들고 바다를 보러 갑니다. 그곳에서 온종일 독서를 하고 시내를 배회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입니다.
수많은 이별, 레오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은 이별들에 관해 생각합니다. 자신을 떠난 이들, 그리고 자신이 떠나온 이들.
늘 그렇듯 우리는 만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떠나온 사람들을 위한 존재다. (p.27)
이런 멋진 문장은 대체 어떻게 쓸 수 있는 것일까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정말.. 맞습니다.
날씨가 변할 때마다 나는 돛을 올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p.101)
<도시의 마지막 여름>에는 레오의 외로움과 근원적 불안을 이해하는 친구 그라지아노,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레오가 매력을 느낀 아리아나가 레오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들과의 서사가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레오는 어떤 존재로 남을까요. 떠난 이? 떠나온 이?
소설에서 레오가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Konstantinos Kavafis, 1863-1933)를 인용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도시의 마지막 여름>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이 속한 도시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며, 당신을 위한 배도 도로도 없기에 다른 곳에서 희망을 품지 말라고, 이 세상 작은 구석에서 인생을 낭비한 것처럼 그 어느 곳이라고 해도 당신의 망가진 인생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했다. (p.127)
살다 보면, 그리고 여행을 하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이 끌리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가 내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라면 그보다 더 명확한 '이유'는 찾기 어렵겠습니다. 딱 2개 도시가 떠오르네요.
<도시의 마지막 여름>은 특히 주인공 레오에게 꽤 깊이 빠져 읽었습니다. 어둑어둑 비가 내리는 초저녁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누구에게도 나쁜 감정이 없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 있고 그것을 따라 살았을 뿐이다. (p.245)
레오와의 이별이 제 인생에 어떠한 계기가 될까요.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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