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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Barbarians」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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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Barbarians」를 읽고


1980년에 출간된 존 맥스웰 쿳시(John Maxwell Coetzee, 1940-)의 초기 작품 <야만인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Barbarians>입니다. J.M. 쿳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로 다양한 저서들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의 모순과 갈등, 인종차별, 서구문명의 위선 등을 그려내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1983년과 1999년 두 차례 (맨)부커상, 200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어느 한 제국의 변경 도시 치안판사인 '나'의 자기고백적 서사를 담은 작품입니다. '나'의 지위로 보면 제국주의를 주도하는 계층에 속하지만 그의 서사는 제국주의의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 주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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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허위적인 유혹자라는 걸 알았다. 욕망으로 가장한 질투심과 동정심과 잔인성의 허위 말이다. (p.222)

 

치안판사인 '나'는 고문 후유증으로 눈이 먼 야만인 여성에게 마음이 끌리고 이 일로 인해 야만인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아 감옥에 갇히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치욕을 당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에 헌신하는 '나'를 대하는 야만인 여성은 그의 위선을, 제국주의의 위선을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제국을 배신하고 감옥에 갇힌 치안판사 '나'는 온갖 고문을 당합니다. 그의 죄목은 야만인들을 통치하며 제국에 헌신해 온 치안판사로서 오랜 시간 정의에 대해 자문해 왔다는 것입니다. 제국이 어떠어떠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유별난 생각, 제국에게 그것은 하극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지? 그게 가능하오?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소." (p.207)

 

자신을 모질게 고문한 교도관들에게 '나'는 오래 품어 온 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의 최종 수신자는 아마도 제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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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문한 사람들은 고통의 정도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육체 속에서 육체로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내게 보여주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온전하고 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만 정의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쥐어잡히고 파이프가 목구멍 속으로 쑤셔 넣어지고 그 속으로 소금물이 부어져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토하는 상황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빠르게 정의에 관한 생각들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육체로서 말이다. (p.190)

 

지금 '나'에게 남은 자유는 고작 먹거나 배고플 자유, 침묵을 지키거나 혼자 지껄일 자유, 문을 두드리거나 비명을 지를 자유 정도가 전부입니다. 치안판사로 사는 동안 줄곧 생각해 온 위선적인 정의가 아닌 실제적이고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에 대해 깨닫습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끝장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제국의 시대를 연장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제국은 낮에는 적들을 쫓아다닌다. 제국은 교활하고 무자비하다. 제국은 사냥개들을 이곳저곳에 파견한다. 제국은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 산다. (p.219-220)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겠다는 제국의 야만성, 그리고 그 제국과 공모하는 개인의 허위,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이러한 제국주의의 모순을 '나'를 통해 줄기차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대체 야만인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죠.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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