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스위스 출신 철학자이자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의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입니다. 원제는 'The Course of Love(사랑의 단계)'로 표제에서부터 이 책의 내용을 친절하게 예고해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알랭 드 보통이 21년 만에 내놓은 소설로 사랑에 관한 철학자답게 연애와 사랑의 메커니즘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습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낭만적인 연애를 거쳐 결혼한 라비와 커스틴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이들의 이야기 중간중간 삽입된 '철학박사' 알랭드 보통의 흥미로운 심리 해석이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부 낭만주의」에서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연애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애의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처음 일어나는 심리적 기전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해석이 탁월합니다.
다른 사람이 영혼의 짝이라는 느낌, 이 확신은 아주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객관적 지식은 끼어들 틈이 없다. 중요한 건 직관, 즉 이성의 정상적 작용 과정을 건너뛰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만 같은 자연발생적인 감정이다. _1부 낭만주의(p.13)
그야말로 '그냥', 이유 없이 그 느낌은 찾아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체득한 모든 정보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직관이 이성이나 지식보다 믿을만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가끔 아닐 때도 있지만. 아닐 때가 많지만?
「2부 그 후로 오래오래」, 「3부 아이들」, 「4부 외도」,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라는 순서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설레는 감정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만남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토라짐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_2부 그 후로 오래오래(p.87)
알랭 드 보통은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러 번 토라져 본 사람으로서 '토라짐'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토록 정확히 설명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토라짐의 대상을 그토록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듭니다. 이 의문은 기묘한 자존심일까요.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알랭 드 보통은 모두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_4부 외도(p.237)
「1부 낭만주의」에서 정의한 결혼과 「4부 외도」에서 다시 정의한 내용을 비교해봅니다. 낭만주의 시기에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과 외도라는 상황에 처했을 때 결혼을 생각하는 관점은 분명 다르겠지요.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_1부 낭만주의(p.65)
결혼의 시작은 무한히 친절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친절한 무엇이군요. 음. 결국 그런 것입니까?
결론은 「5부 낭만주의를 넘어서」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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