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하룻낮의 행복」을 읽고
다소 괴짜 같지만 독특하고 천재적인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의 에세이 <하룻낮의 행복 Une journee de bonheur>입니다. 2017년 발표한 작품으로 라틴어 문장, 'Carpe diem'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라' 또는 '이 날을 따라' 등으로 번역되는 Carpe diem이 파스칼 키냐르를 만나 어떤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독서와 독자에 관해 통찰한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L'Homme aux Trois Lettres>을 읽고 파스칼 키냐르의 팬이 됐습니다. 에세이스트 중에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의 글은 읽기 전부터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하룻낮의 행복>에서 'Carpe diem'을 이해하기 위해 꽃을 따는 행위, 일본의 꽃꽂이 이케바나, 신화, 여러 예술 작품, 주기도문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유를 이어갑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소재들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라틴어 'Carpe diem'이라는 표현은 '너의 하룻낮을 베어라' 보다는 '낮의 매 순간을 조금씩 풀을 뜯듯이 천천히 뜯고 잘게 빻아 씹어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거의 이런 말입니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네 몫의 햇빛을 뜯도록 하라.' _본문 가운데
특히 파스칼 키냐르는 <하룻낮의 행복>이라는 표제처럼 하루 중 태양 빛이 머무는 시간에 대해 많은 지면을 들여 질문하고 대답합니다. 그날그날 거두어들여야 할 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밤은 그저 모든 밤인 반면에, 낮은 each day, 즉 매일이 새롭게 태어나는 특이한 날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The death of each day's life. 아주 정확하게 번역해야 한다. 잠은 매-일-의-삶의 죽음이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하룻밤의 잠은 영원한 죽음의 연습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 역시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려 밤은 낮의 죽음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걱정과 고민이 많고 불안하면 쉽게 잠들 수 없고 숙면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하룻낮의 행복>에서 특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 부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새벽이 싫증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가 불쑥ㅡ느닷없이 나타나 지속되는ㅡ 모습을 드러내기에 앞서 공간 깊숙한 데서 떠오르는 빛에 질리는 일이란 결코 없었다. 그것은 'bonne heure(이른 시간)'이다. '지속되는 느닷없음'이다. _본문 가운데
파스칼 키냐르는 탄생의 순간과도 같은 새벽을 예찬합니다. 그 탄생은 언제나 느닷없이 일어나며 또한 지속됩니다. 인간의 탄생, 그리고 삶과도 닮았습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새벽에 자거나 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새벽은 늘 성스럽게 지켜야 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새벽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2024.12.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터 한트케 중편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를 읽고 (2) | 2024.12.07 |
---|---|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2) | 2024.12.06 |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더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를 읽고 (4) | 2024.12.04 |
아주라 다고스티노·에스테파니아 브라보의 「눈의 시」를 읽고 (0) | 2024.12.03 |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고 (0) | 2024.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