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1947년 출간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대표작 <페스트 La peste>입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 발표된 직후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가 팔리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걸작'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이 책은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되는데 팬데믹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페스트>의 내용에 실질적인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스트>의 배경이 되는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 대한 소개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p.12)' 이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권태로워하며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어느 날 이곳 오랑에 죽은 쥐, 혹은 쥐떼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모든 심각한 사태는 언제나 사소한 사건으로 암시되는데 <페스트>에서는 죽은 쥐들이 그 역할을 맡습니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료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참 한가운데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밟았다. (p.16)
페스트가 번지면서 분위기가 심상치않다는 것을 느낀 오랑시의 주민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평소대로 맡은 일을 해나갑니다. 그러다 시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되고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의 출입문이 봉쇄되자,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으며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85)
<페스트>의 서술자는 봉쇄된 오랑시의 주민들에 대해 '우리 시민들은 페스트로 인해 유배를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었다.(p.89)'라고 표현합니다. 이제부터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 우리의 고통으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우리'라는 대명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에 희망을 하나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p.201)
도시 전체가 전염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입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도시의 시민들은 아직 폐쇄당하지 않은 다른 지역 주민들을 부러워하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폐쇄된 도시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죽음 앞에, 특히나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앞에 사람들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p.295)
코로나19 시기에 전 세계가 활기를 잃었던 기억이 납니다. 팬데믹 시기에는 병에 걸린 사람, 걸렸던 사람, 병으로 죽은 사람, 앓는 사람,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만 구분됩니다. 그 외 어떤 것도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병이 옮을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옮길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의심과 죄책감, 혐오 같은 감정이 온 도시를 휘감고 있습니다.
<페스트>의 확산세가 잦아들고 오랑시는 다시 개방됩니다.
페스트가 남기고 간 상흔으로 오랑시의 사람들을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고 권태로워하겠지만 그 도시의 저변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스며있습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를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p.360-361)
역사는 늘 되풀이 됩니다. <페스트>가 출간된 이후에도 전 세계는 여러 차례 팬데믹을 겪어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고 앞으로도 크고 작은 팬데믹이 닥칠 것입니다.
카뮈는 리외의 생각을 빌려 <페스트> 마지막 부분에서 팬데믹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와도 같은 예언을 합니다.
2024.11.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트릭 모디아노의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를 읽고 (6) | 2024.11.30 |
---|---|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2) | 2024.11.29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고 (0) | 2024.11.27 |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0) | 2024.11.26 |
버지니아 울프의 「벽에 난 자국」을 읽고 (0) | 202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