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의 1953년 발표작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Les Petits Chevaux de Tarquinia>입니다.
이 소설은 뒤라스의 마지막 연인이자 동반자로 생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한 38세 연하의 28세 청년 얀 앙드레아를 만나게 해 준 작품으로 얀은 이 책에서 수많은 '문장'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이 책 한 권으로 철학을 공부하던 청년은 모든 책을 버리고 오직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만 빠져듭니다. 이런 운명적인 사랑!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의 한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무더위는 엄습하는데 특별히 할 일은 없는 다섯 명의 프랑스인 친구들이 이곳에서 보내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크와 사라 부부, 루디와 지나 부부, 독신인 다이아나가 그들입니다.
무덥고 권태로운 휴가지에서의 일상에 옅은 균열이 생기고 이것으로 인해 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미묘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더위와 추위는 매우 다른 것이다. 더위는 일이 아닌 여가에 적합한 반면, 추위는 보다 생산적이며, 실질적인 행동을 유도한다. 아이디어는 겨울에 더 잘 떠오르지만, 인간의 본성은 여름에 더 잘 드러난다. 인간의 품행은 겨울보다 여름에 더 의미심장하다. _본문 가운데
올해 기록적인 폭염을 지나온 뒤라 그런지 더위와 추위에 관한 서술자의 단상에 더없이 공감이 됩니다. 더운나라와 추운 나라의 사람들의 성향 차이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여름에 잘 드러난다는 말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에서 앞으로 일어날 에피소드에 관한 중요한 복선역할을 해줍니다.
다이아나가 옳았다. 루디와 지나도 사라와 자크처럼 지겹도록 싸웠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모질고 기나긴 다툼은 해변 전체를, 밤들을, 휴가를 망쳤다. 그렇다. 하잘것없지만 삶을 망치는 다툼들이 있다. _본문 가운데
다섯 명의 친구들 가운데 유일한 독신인 다이아나를 추켜세우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부부'싸움이라는 피할 수 없는 다툼 앞에서 말이죠.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30대 후반에 집필한 것을 고려하면 부부 사이에 관한 통찰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될까요. 제삼자에겐 그야말로 하잘것없는 다툼의 소재가 휴가를 망치고 삶 전체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_본문 가운데 루디의 말
"몇 해 전부터 난 밤이면 더러 다른 남자를 꿈꿔." / "알아, 나 역시 다른 여자를 꿈꿔." / "어찌해야 할까?" /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순 없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_본문 가운데 자크와 사라 부부의 대화
작품에는 여러 사랑의 형태가 교차하며 드러납니다.
부부간의 사랑, 권태로운 사랑, 새로운 사랑, 비밀스러운 사랑, 나이 든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쓸쓸한 사랑, 치열하게 다투는 사랑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내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에서 제가 건져올린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자문해 봅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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