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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버지니아 울프의 「벽에 난 자국」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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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벽에 난 자국」을 읽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단편소설 <벽에 난 자국 The Mark on The Wall>입니다. 1917년 발표한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작품으로 그녀의 남편 레너드와 함께 쓴 단편소설집 「Two Stories」에 수록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버전은 민음사에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 디 에센셜」 수록본인데 <벽에 난 자국> 외에도 5편의 작품 <유산>, <V양의 미스터리한 일생>, <큐 식물원>, <자기만의 방>, <런던 거리 헤매기>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표제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주요 작품만 모아둔 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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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난 자국>은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쓰였습니다. 주인공 화자는 어느 날 벽에 찍힌 표식을 알아차린 후 그것이 무엇일지 추측하는 과정에서 종교, 국가, 자아 성찰, 자연, 불확실성이라는 여러 주제를 탐구해 나갑니다.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기법에서 모더니즘 소설로의 이행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들어 벽 위의 자국을 처음 본 것은 아마 올 1월 중순이었을 게다. 어떤 날짜를 확실히 하려면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떠올릴 필요가 있다. (p.39)

 

<벽에 난 자국>은 빛을 받으면 볼록 튀어나온 듯이 보이기도 하고 형태가 완벽히 둥글지도 않은 특이한 형상입니다. 그림자가 보이는 듯도 한 게 어느 순간 화자로 하여금 '무덤'을 연상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볼때 특정한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그 순간에 개인이 처한 신체적 정서적 상황에 그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자국에서 무덤을 본 주인공은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우울한 기분으로 의식이 이어집니다. 일순간에 말이죠. 이러한 현상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묘사가 정말 탁월합니다. 

 

어떤 새로운 사물을 보면 생각은 재빨리 떼 지어 몰려가서, 지푸라기 한 가닥을 열심히 옮기는 개미들처럼, 그것을 약간 들어 옮기고는 다시 내버려 둔다... (p.40)

 

재빨리 떼 지어 몰려가는 생각들이 눈에 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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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생각, 도저히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괴로울 때 화자는 <벽에 난 자국>을 떠올립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혹은 수많은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일단 움직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버지니아 울프는 '자연의 수법'이라고 표현하며 그래서 행동가를 약간 경멸한다는, 문학가 다운 의견을 덧붙입니다.   

 

나는 자연의 수법을 알고 있다. 흥분이나 고통을 일으킬 조짐이 있는 생각을 끝낼 방법으로 행동을 취하라고 자극하는 것 말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행동가를 약간 경멸한다. (p.50)

 

3년째 진행 중인 전쟁, 화자는 인간과 문명에 대해 생각하다 다시 <벽에 난 자국>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벽에 난 자국>은 과연 화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불러일으키고자 한 사유는 무엇일까요. 실존에 대한 자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버지니아 울프 디 에센셜」 수록작들 모두 좋지만 <벽에 난 자국>이 유독 지금 제게 와닿는 이유가 분명 있겠지요.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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