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를 읽고
195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 모리아크(Francois Mauriac, 1885-1970)의 1927년 장편 소설 <테레즈 데케루 Therese Desqueyroux>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대표작으로 인간사회에서의 소통의 부재, 그리고 신과의 관계도 단절된 인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훗날 모리아크는 주인공 테레즈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고백합니다.
<테레즈 데케루>의 주인공 테레즈는 자유가 억압된 집안 분위기에서 남편 베르나르를 독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체포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집안사람들의 허위 진술 덕분에 풀려난 테레즈는 대신 평생 화목한 부부를 연기하며 살 것을 강요당합니다. 20세기 초 여성에게 강요된 수많은 사회적 억압을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드러낸 작품입니다.
<테레즈 데케루>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를 향한 헌사와도 같은 짧은 글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겠지요.
테레즈, 많은 사람들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너를 염탐하고, 네가 가는 길목에서 너를 붙잡고, 너의 가면을 벗기던 나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p.23)
그가 존재함을, 그의 실존을 알아주는 이가 있음을 테레즈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소 기각 판결 후 풀려난 테레즈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라기보다는 무언의 강압을 재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너무 힘들었다고, 지친다고 말하는 딸의 이야기를 아버지는 듣지도 않고 딸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딸아이 때문에 상원으로 향하는 그의 승전이 좌절되었다는 사실이다. (p.30)
작중 화자의 부연에 따르면 테레즈의 아버지는 딸이란 모두 바보가 아니면 히스테리 환자라고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유럽지역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테레즈 데케루>는 작품 내내 억압당하는 한 여성의 철저한 고독과 고뇌를 세밀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레즈 역시 이제는 체념한 듯한 모습에 안타까움만 더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침내 테레즈에게 숨 막히는 선고를 내립니다.
"너희 부부는 한 손에 있는 두 손가락처럼 붙어 나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단 말이다... 알겠느냐? 죽을 때까지 말이야..."(p.33)
남편 독살 미수라는 죄를 덮어준 가족 앞에서 테레즈의 자유로운 삶이란 공허하기만 합니다.
나라는 개인 감정은 뒷전이야. 가족들의 눈에 나는 기껏해야 포도나무일 뿐이야. 오로지 내 옆구리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만이 중요할 뿐... (p.115)
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결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그러나 테레즈의 남편 베르나르는 '육중한 몸짓, 콧소리, 단호한 어조와 만족스러운 태도'를 가진 남자로 그녀를 더욱 고립된 세계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무시당한 채 살아야 했던 테레즈의 처참한 생을 오직 프랑수아 모리아크만이 온전히 이해해 주는 듯합니다. <테레즈 데케루>라는 표제는 한 여성의 이름이자 그 여성의 삶이며 단절과 고독의 메타포입니다. 모리아크는 이후 이 여인 테레즈의 삶을 다룬 연작 3편 <호텔에서의 테레즈>, <의사를 방문한 테레즈>, <밤의 종말>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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