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를 읽고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 1971-)의 2015년 첫 장편소설 <동조자 The Sympathizer>입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은 자신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동조자>는 베트남전 직후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이중간첩인 주인공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베트남인이면서 동시에 미국인인 저자의 날카롭고 풍자적인 문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라는 평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지 베트남-미국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쉽게 읽어내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_첫 문장
<동조자>의 첫 문장에서부터 화자인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합니다. 이 말이 결코 자랑스럽거나 만족스러운 어투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결코 통합될 수 없는 분열된 인간을 상징하기 때문이겠지요. 표제에 사용된 '동조자', 그리고 베트남계 미국인이라는 저자의 이중적 지위가 첫 문장에서부터 오버랩됩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동조자>에 대해 '전쟁 소설의 새로운 고전'이라는 평을 냅니다. 참신하지 않은 주제를 남다른 관점으로 제시한 이 책은 전쟁 이면의 것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들은 내 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우였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는 막 함락되려는 참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도시는 곧 해방될 터였습니다. _본문 가운데
소설은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주인공의 자백으로 시작됩니다. 남베트남 특수부 소속 군인이자 CIA 공작원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CIA 비밀 요원이자 북베트남이 남쪽에 심은 고정간첩입니다. 덕분에 모든 사안의 양면을 고려하는 재능을 갖게 됐지만 그 어디에서도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그때껏 늘 분열되어 있었다. 비록 내가 두 개의 삶을 살며 두 마음을 가진 남자가 되기로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나는 '잡종 새끼'라고 불렀는지를 감안할 때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우리나라 그 자체가 저주받고, 타락하고, 북과 남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_본문 가운데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의 눈에 이 부분의 묘사는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우리 세대에서 전쟁과 분단은 마치 남의 일처럼 여겨질때가 대부분이지만 무의식에 새겨진 '분열'이라는 정서를 피해 갈 순 없나 봅니다.
책의 뒤편 부록에는 2015년 4월 24일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우리의 베트남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비엣 타인 응우옌의 칼럼이 수록돼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4살때 미국에 피난 온 저자와 가족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에 제대로 안착한, 말하자면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응우옌은 그것은 '상실과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상실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로지 미합중국이 300만 우리 동포의 목숨을 빼앗은 전쟁을 치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니까. _「우리의 베트남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가운데
베트남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이민 간 다수의 필리핀인, 우리 한국인들까지, 모두가 '전쟁으로 인해 유발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재미동포가 되었습니다.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응우옌은 군산복합체라는 병폐에 대해 언급하고 자신의 책 <동조자>가 문학 영역 밖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치길 바란다는 인터뷰도 남깁니다.
올해 2024년 초 박찬욱 감독이 이 소설 <동조자>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HBO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이 책의 추천사에서도 밝혔듯 <동조자>가 다른 나라 얘기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드라마로도 한 번 보고 싶네요.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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