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김영하 작가가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인사>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집필을 시작해 약 2년을 다듬어 2022년 출간한 책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한 결과를 담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별인사>는 김영하 작가의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인류와 자연, 심지어 휴머노이드(humanoid)에 대한 애정까지 포괄해서 말이죠. 막연하지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별인사>의 주인공 철이는 휴머노이드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평온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철이는 아버지를 닮아 발코니에 직박구리를 위한 물그릇까지 챙겨 내놓는 다정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어느 겨울날 직박구리의 죽음 앞에 철이와 아버지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철이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물그릇을 집안으로 들였다가 다시 내놓지 않은 바람에 직박구리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잘못 아니야.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_본문 가운데
아버지의 이 말 속에도 '수천 가지' 함의가 담긴 듯 보입니다. 죽음과 이별, 헤어짐에는 수많은 사정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 일들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철이는 직박구리와 안타까운 이별 경험을 합니다.
"저 기계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요. 제발 내보내주세요." _본문 가운데
휴머노이드들이 수용소로 불리는 어떤 장소로 잡혀 들어옵니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밀집된 수용소 환경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은 스스로가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이들의 고통을 과연 로봇의 그것이라고 무시해도 될지에 관한 윤리적 문제가 생깁니다.
미래에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함께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야 할까요 로봇으로 취급해야 할까요. 그 한계를 정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마저 인간이 하고 있는 것인지 휴머노이드가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휴머노이드는 스스로가 인간이 아닐 것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작별인사>의 목차 가운데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대체 무엇이죠.
우리는 언젠가 삶과 작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는 언젠가 지구와 작별해야겠지요. 그러나 그때까지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소설 <작별인사>에 나오는 달마의 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_본문 가운데
달마는 덧붙여 지구상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존재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축이 자신의 책 <다정한 서술자>에서 '동물의 고통은 절대적이면서 총체적이다'라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동물은 인간처럼 스스로의 복지를 챙기지 못합니다. 그들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휴머노이드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댈 수 있을까요.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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