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을 읽고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의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L'Homme aux Trois Lettres>입니다. 이 작품은 2002년부터 시작한 저자의 '마지막 왕국' 시리즈 가운데 제11권에 해당합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마지막 왕국은 말하자면 언어를 습득하면서부터 죽음까지에 이르는 전 생애에 걸친 문학에 대해 논하는 연작 기획물입니다.
글을 읽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해 문학적으로 써내려간 이 에세이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아름다운 '그 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책의 표제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은 라틴어로 도둑을 뜻하는 세 글자 명사 fur로 로마인들이 도둑을 지칭할 때 에둘러 사용하던 표현이라고 합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 표현을 '독자',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사용합니다.
담을 넘어 들어가는 도둑에게서 무리가 아닌 단독성을, 시끌벅적함이 아닌 침묵을, 어둠과 은밀함 등의 속성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것을 독서의 속성과 연결시킵니다.
나는 내가 읽은 것을 모조리 훔쳤지... 나는 책을 읽느라 평생 혼자였던 것 같네. _본문 가운데
키냐르는 '읽는 자'와 '쓰는 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은 독자로서의 지위의 연장선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읽기와 쓰기는 연속체로 보고 있습니다.
내게 바다에 대해 말하지 말라, 뛰어들라.
내게 산에 대해 말하지 말라, 올라가라.
내게 이 책에 대해 말하지 말라, 읽어라. _본문 가운데
파스칼 키냐르는 책을 지식으로 대하지 말고 온전히 책에 녹아들 것을 권유합니다. 지식과 지혜라는 관점에서 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문자 애호는 육신을 잊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고 그것은 마치 탄생과도 같은 순간입니다.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인 독자는 문자를 훔쳐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인 것이죠.
독서는 삶을 향한 통로를, 삶이 지나는 통로를, 출생과 더불어 생겨나는 느닷없는 빛을 더 넓게 확장한다. 독서는 자연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희끄무레한 대기에서 경험이 솟아오르게 한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듯이. _본문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역시 첫 문장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은 후 다시 책을 내려놓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의 세계가 좋다. 계속 책을 읽는 게 좋다. 책의 침묵 속에서, 시선 아래 펼쳐지는 긴 문장 속에서 늙어가는 게 좋다. 책이란 세상에서 동떨어졌으나 세상에 면한, 그럼에도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슭이다. _본문 가운데
책이 좋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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