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축의 「다정한 서술자」를 읽고
201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Olga Tokarczuk, 1962-)이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출간한 작품입니다. 문학과 작가에 대한 강연록과 산문, 노벨 문학상 수상 시 수락연설문 등을 엮은 에세이집으로 2020년 발표한 <다정한 서술자 Czuly narrator>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면 으레 이러한 책을 써줘야 할 것만 같습니다. 반가운 책이죠.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입니다.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_본문 가운데
<다정한 서술자>에서 올가 토카르축은 작가에 있어 '다정함'은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자세라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대상과 감정을 공유하고, 그와 끊임없이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관계 맺는 모든 것에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인격화하여 바라보는 일, 올가 토카르축이 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그의 작업에 적잖은 영향을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고통은 동물의 고통보다는 견디기 쉽다. 인간은 널리 공표된 존재론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특권을 지닌 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도움을 기대할 문화와 종교가 있으며 자신을 구원해 줄 신도 있다. 인간의 고통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위로도 치유도 없다. 동물의 고통은 절대적이면서 총체적이다. _본문 가운데
동물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보면 올가 토카르축의 동물권에 관한 시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제게 동물의 고통을 언급한 이 부분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게 문학이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력한 장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_본문 가운데
올가 토카르축은 어린 시절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의 책들 속에서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80일 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 리> 같은 모험을 다룬 공상과학 소설이 당시 폐쇄되고 따분한 분위기에서 자라던 동유럽 폴란드의 소녀에게 자유롭고 넓은 세상의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이제 올가 토카르축이 다음 세대의 쥘 베른이 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의 책을 읽을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올가 토카르축이 말하는 문학의 '네트워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정함을 담아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을 이루어 내는 일, 그것이 문학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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