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고
문학작품을 접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작품의 저자, 그의 지인들, 그리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까지. 그러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작가는 물론이고 작품 속 캐릭터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책 <끝내주는 괴물들 Fabulous Monsters>은 37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화, 신화, 코믹북, 전설, 고전을 망라하는 작품들에서 발굴(!)해낸 흥미로운 캐릭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캐나다 작가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 1948-)로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이기도 합니다. 방대한 양의 책을 읽고 수많은 캐릭터를 만났을 텐데 그가 엄선한 서른일곱 명의 면면이 궁금해집니다.
저자 서문에서 알베르토 망겔은 이 책에 대해, 그리고 이 책을 쓴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드레이크는 바보들에게 복수하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삐삐는 관습 따위는 아랑곳 말고 내 판단대로 밀고 나가라는 충고를 되풀이하고... 피노키오는 어째서 착하고 정직하게 구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거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_「저자 서문」 가운데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처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인터넷이 발전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아이들이 더는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알베르토 망겔은 모든 장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에 손수 그 캐릭터들의 모습을 펜화로 그려두었습니다. 프랑스 삽화가 장자크 상페(Jean-Jacques Sempe)의 그림처럼 귀엽고 영감이 살아있는 그림체입니다.
빨간 모자의 신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마찬가지로 시민 불복종이다. 독재자 같은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따르기는 하되,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달콤한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라면 빨간 모자를 지지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탈선하는 게 좋아. 그 편이 더 재미있고 하여튼 여러모로 낫잖아" 라면서. _「빨간 모자」 가운데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 Little Red Riding Hood」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군요, '시민 불복종'.(ㅋㅋ) 보통 출생순서를 봤을 때 첫째보다는 둘째나 막내들이 '빨간 모자'의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계획이 있는 것이죠. 저 역시 빨간 모자의 성향을 지지합니다. 강력하게.
그렇게 에밀은 어른이 된다. 그는 소피를 만나고, 둘이서 새로운 에밀을 낳는다. 그러고 나면 그들의 삶이 달라질까? 미래의 에밀들도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를 생산하고 싶어 하는 시스템에 갇힌 채, 옛날 그들을 지배했던 부패한 남자와 여자들의 그림자 속에서 근근이 실존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_「에밀」 가운데
장자크 루소의 「에밀 Emile」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제가 에밀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마도 적잖은 사람들이 답을 찾지 못하는 그 지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작품의 저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이고 작품을 창작하는 동기가 되겠지요.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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