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신-저항과 복종」을 읽고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나치운동가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대표 저서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Widerstand und Ergebung>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본회퍼 목사가 베를린 테겔 군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43년 4월 5일부터 1944년 10월 8일까지 쓴 서신으로 수신자는 그의 부모와 친구 에버하르트 베트게입니다. 훗날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편지와 함께 동봉된 여러 편의 시와 구상들을 추려내 편집하여 <옥중서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나치 독일 시대에 양심을 지키기 위해 반나치운동을 벌인 지식인이었습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세운 계획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1943년 4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2년여를 수용소를 전전하다 1945년 4월 9일, 39세의 나이로 독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이후 1996년 8월 1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본회퍼의 복권 탄원건에 대해 '본회퍼의 행동은 나치의 폐해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구한 행동이었다'라는 취지로 판결합니다.
<옥중서신>에는 본회퍼 목사의 깊이 있는 구상들이 1부 '10년 후ㅡ1943년으로의 전환에 대한 해명'에 수록돼 있습니다. 자유, 양심, 의무, 성공, 시민의 용기, 우매함, 인간 멸시, 신뢰, 자비, 죽음, 고난, 그리고 신앙 명제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반나치운동을 하다 잡혀온 강제 수용소에서 본회퍼 목사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며 그 가운데서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합니다.
우매함은 선의 적으로서 사악함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매함에는 백약이 무효다. 우매함에는 저항도, 힘도 소용이 없고, 기본 지식도 쓸모가 없다. _「10년 후」 가운데
1943년 7월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시 '나는 누구인가?' 에서 수감생활 중인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성찰한다는 것, 디트리히 본회퍼는 가장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애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_시 「나는 누구인가?」 가운데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그러나 그 역시 한없이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본회퍼의 내적갈등이 잘 드러납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그 사람도 '나'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사람도 '나'일 것입니다.
1943년 12월 성탄절에 본회퍼 목사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한 기도'를 시로 써내려갑니다.
내 안에는 어둠이 있지만, 당신께는 빛이 있습니다. / 나는 고독하지만, 당신께서는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 나는 소심하지만, 당신께는 도움이 있습니다. / 나는 불안하지만, 당신께는 평안이 있습니다. / 내 안에는 노여움이 있지만, 당신께는 인내가 있습니다. / 나는 당신의 길을 알지 못하지만, 당신께서는 나를 위한 바른길을 아십니다. _ 시 「동료 수감자들을 위한 기도」 가운데
이 시에서 말하는 동료 수감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두렵고 소심하고 분노하고 고독하고 쉽게 길을 잃지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39세의 나이에 나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본회퍼 목사는 "이로써 끝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의 유언대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이 책 <옥중서신>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신앙이 무엇이며 인간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목사로, 신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4.11.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 오스터와 존 맥스웰 쿳시의 「디어 존, 디어 폴」을 읽고 (10) | 2024.11.20 |
---|---|
존 맥스웰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를 읽고 (2) | 2024.11.19 |
카슨 매컬러스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을 읽고 (0) | 2024.11.17 |
파스칼 키냐르의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을 읽고 (6) | 2024.11.16 |
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고 (2)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