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와 J.M. 쿳시의 「디어 존, 디어 폴」을 읽고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Paul Benjamin Auster, 1947-2024)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J.M. 쿳시(John Maxwell Coetzee, 1940-)가 3년간 교환한 80여 통의 편지를 묶은 <디어 존, 디어 폴 Here and Now: Letters 2008-2011>입니다.
두 문학계의 거장이 동료 작가로서 나눈 우정과 사유를 엿볼 수 있다는 자체로 이 책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편지에서 두 소설가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스포츠, 우정과 사랑, 아버지의 역할, 문학과 영화, 철학과 정치, 금융 위기와 예술, 죽음, 에로티시즘, 결혼까지 가히 방대합니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과 위트도 빠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실망과 저의 실망, 세상이 나아가는 방식에 대해 두 나이 든 신사가 공유하는 실망이로군요. <내 젊은 시절에는>하고 운을 뗄 때마다 아이들이 불만스레 눈을 굴리는, 늙은 영감태기가 되어야 하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운명을 피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불평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뭐가 있을까요? _편지 가운데
2010년 8월 18일 J.M. 쿳시가 쓴 편지입니다.
나이듦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나이 듦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꼰대', '라떼는'이라는 표현으로 나이 듦을 조롱하고 손쉽게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에 대해 두 소설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으로,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두 신사'입니다.
2010년 4월 20일 폴 오스터가 쓴 편지에는 이 두 소설가가 어떻게 편지를 주고받는지가 나옵니다. 이메일이 아닌 팩스로 말이죠. 종이에 인쇄된 활자에 익숙하고 아마도 그것을 좋아할 두 작가에게 아주 적합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애하는 존, 팩스 전원을 꽂아 놓지 않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첫 두 페이지는 완벽하게 깨끗했지만 3, 4페이지는 흐릿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간 있을 때 그 페이지들을 다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_편지 가운데
바로 확인이 가능한 휴대폰이 있고 이메일이 있지만 둘은 서로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때때로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상대방의 시간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집필 생활에 대하여, 백지를 마주하는 절망감에 대하여, 오지 않을 영감의 고뇌에 대하여... 글쓰기는 쉼 없이 주고 주고 또 주는 문제입니다. _편지 가운데
2011년 5월 5일 쓴 편지에서 J.M. 쿳시는 작가로서의 고뇌를 또다른 작가 폴 오스터에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는 때로 가족보다 가깝게 느껴집니다.
2011년 4월 18일에 쓴 편지에서 J.M. 쿳시는 불면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지 몇 해 되었는데 하루 4시간도 채 숙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J.M. 쿳시는 낮에 잠깐씩 눈을 붙이는데 이것을 '세상으로부터의 작은 도피'라고 표현합니다. 소설가들이 주고받는 편지는 그 자체로 문학작품입니다. 그는 그 도피 중에 재미있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 꿈들을 좋아하고 즐기기까지 하지만 약간의 슬픔이 남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서 이 사소한 기술을 쌓아 왔는데 제가 떠나면 다 사라지고 퇴색될 거라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_편지 가운데
일흔이 넘은 남성이 또 다른 비슷한 연배의 남성에게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쓴다는 것이 '너무너무' 멋있어 보입니다.
2024.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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